가능성만으로 아름다운 10대

2007.07.15 10:20:00

십대 아이들은 부모의 보람이고 희망이지만 또한 짐이다. 매일 용돈을 줘야 되고 학원비를 대야 하고 입히고 먹여야 된다. 

십대 아이들은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가 아니다. 돈 한푼 벌어 제 용돈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제 용돈을 벌거나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궤도에서 조금 벗어난 경우에 해당될 뿐 부모로서 그리 달가운 일도 아니다. 그들의 본분은 학업에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가 되고 사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벽 일찍 아침밥은 먹는둥 마는둥 학교로 가야한다. 아침 자율학습부터 밤 아홉시 열시까지 공부는 이어진다. 말이 공부지 태반은 잠을 자고 태반은 장난치며 보낸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반복되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파김치가 된다. 흐리멍텅한 기분이 되기도 한다. 효율적인 학습과는 거리가 멀다. 교수학습법 이론은 다 소용없다. 오로지 강행군이다. 더러 효과를 보기도 할 것이다.

부모는 일찍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학교에선 등교시간을 정하고 빽빽한 일정을 준수할 뿐이다. 놀고 싶은 아이들은 핸드폰으로 수없이 문자를 날리거나 게임을 한다. 좀 시시하긴 하지만 복도에서 뜀박질을 하며 놀아야 한다. 여럿이 시시덕거리며 야한 동영상을 보기도 한다. 졸리면 학교에서 그냥 잔다. 쉬는 시간엔 놀아야 하니까 수업시간에 잔다. 어떤 아이는 쉬는 시간엔 괜찮다가 수업만 시작하면 화장실이 가고 싶다. 수업종이 울리면 갑자기 세수도 하고 싶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손을 번쩍 들어 왜그러냐고 하면 화장실이 가고 싶단다. 공부가 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표현이다.

누가 이 거대한 물줄기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불만이 있으면 불만을 가지고, 터트리지도 못할 폭탄 한 개씩을 가슴에 담고 거대한 생존의 대열에서 비켜설 수가 없다. 장엄한 대한민국 청소년의 대열에서 어떻게 이탈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곧 낙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침묵으로 무저항으로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통과의례인 것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대열에서 이탈하고도 싶다. 선진국엔 엄두를 못내고 학비가 몇 배 싼 동남아로 떠날 궁리도 해본다. 후진국이면 어떤가. 외국유학인데. 영어라도 손쉽게 배우지 않겠는가. 그러지도 못할 바엔 고행하는 수도자처럼 견뎌야 한다. 어떤 의사표시도 포기한채 묵묵히 부족한 잠은 수업시간에 때우더라도 등교시간은 지켜야 한다. 선생님이 잔소리를 하건, 깨우건 말건, 어떤 논리로 협박을 하건 졸린데 어쩌라는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는데 그걸 어떻게 들어올리란 말인가.

아이들은 오히려 태평한데 절망하는 것은 선생님이다. 절망이 아니라 자기모순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성적이 나쁘면  학교 이미지가 실추하고 학부모의 책임추궁이 들어오니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라도 들어올리기 위해 목에 핏발이 서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볼멘 소리를 하는 나도 어떤 대안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대안 없는 맹목적인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지 않는가.

그래도 나는 저 아이들을 철썩같이 믿는다. 저 아이들이 박사도 되고 사장도 되고 정치가도 될텐데. 유명한 운동선수도 되고 공무원도 되고 마술사도 될 것을 나는 철두철미 믿는다. 영어 점수가 삼사십 점에 머물더라도 수학 점수가 이삼십 점에 그치더라도 저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는다. 교사들이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믿는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고 발견하려 하지 않는 저들의 숨은 재주를 믿는다. 저 아이들에게 숨겨져 있는 끼를 믿는다. 반드시 언젠가는 발아하여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할 그 놀라운 신비의 씨앗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매일 잠만 자는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속이 터지는 걸 나는 안다. 선생님 속이 좀 터지긴 하겠지만 아이들 속이야 어디 편하기만 하겠는가. 선생님들 밥 벌어 먹여주기 위해서 학생들은 꼭두각시가 되어 선생님 하라는 대로 졸린 눈 억지로 뜨고 모르는 내용 아는 척 해가며 하기 싫은 공부 열심히 하는 척 하라는 말인가. 우리더러 억지로 동원된 관객이 되란 말인가. 우리가 학교제도의 노예란 말인가.

국어, 영어, 수학을 몰라 쩔쩔매는 저 아이들 속에 들어있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아야 한다. 발아할 때를 기다려 숨죽이고 있는 그 가능성의 씨앗을 보아야 한다. 때가 되어 적당한 수분과 온도와 토양만 마련되면 기세좋게 싹을 틔워 무럭무럭 자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저 아름다운 씨앗을 보아야 한다. 목이 마르면 우물을 파게 되어 있다. 저 잠만 자는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온기를 주자.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햇빛같은 사랑을 주자. 반드시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 싹을 틔워 아름다운 세상 만드는데 당당히 한 몫 할 것이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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