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도 벌써 2주 이상 된 것 같다. 옛날 학교에 있을 때에는 그래도 방학이 되면 으레 자그마한 설렘도 있었다. 나중에 개학 때쯤 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아 마음 아팠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왜냐하면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입시지도를 하다 보면 방학도 그리 특별한 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학은 조금의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는 기대만으로도 조금은 새로웠다.
교육청에서 두 번째로 학생과 선생님들의 방학을 지켜보고 있다. 여전히 학생들은 모자란 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고생을 하고 있다.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에 정신이 없고, 초중학생들도 학원 문전을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선생님들의 생활은 어떠할까. 학교에 나가서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야 함은 물론이고, 연수나 수련활동 및 행사 지원 등도 해야 하고, 인문계고등학교 선생님의 경우는 입시지도를 위해 방과후학습과 자율학습에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며칠 전에 잘 아는 후배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는 방학 중이라면서 방학도 없이 어떻게 지내냐는 것이다. 나는 방학과 관련하여 특별한 추억이 없이 살아왔기에 방학이 있고 없음에 대해 특별한 불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급 학교가 일제히 방학을 하게 되자 교육청도 요즈음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책도 틈틈이 읽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냥, 건강하게 잘 보내고 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세요?”하고 묻자 그 선생님은 장황하게 방학 중 계획을 설명하였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고향에 가서 병환을 앓고 계시는 아버님을 수발하기도 했고, 지난주에는 60시간짜리 세계화 관련 직무연수를 받았고, 다음 주부터는 부천에서 실시하는 전공 관련 직무연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방학이 더 바쁘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보아도 그 선생님은 방학이 더 바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을 걱정하여 이렇게 말했다.
“한 학기 내내 수업과 생활지도에 지쳤을 텐데 방학 중에도 쉴 틈이 없네요. 연수 계획이라도 좀 여유 있게 짜서 재충전 기회를 갖지 그렇게 혹사시켜 지치면 어떡하실 건데요?”라고.
후배 선생님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방학이라는 기간이 남들은 노는 것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부족함이 많으니까 늘 배워야지요. 그 동안 가족들에게도 소홀한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만회해야 하고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우리 선생님들이 방학 동안에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자기 연찬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의 눈에는 ‘쉬는 것’으로 생각하여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쉬면서도 봉급을 챙긴다고 하면서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어제부터 우리지역 해양수련원에서는 ‘학부모 해양체험교실’을 열었다. 지역 내 각급 학교에서 희망한 학부모들이 국립공원 변산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해양수련원에서 학교교육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공감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희망한 학부모들을 교육청에 모이게 하여 인솔 책임을 맡았다. 방학 중이라서 학부모님들이 개별적으로 올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해당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이 아침 일찍부터 나오셔서 학부모들을 교육청까지 안내하여 모시고 온 것이었다. 심지어 집결 시간보다 훨씬 늦게 온 학부모를 한 시간 반가량 걸리는 해양수련원까지 직접 차를 몰아 모시고 오는 선생님도 있었다. 방학 중에도 정말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이 크고 작은 행사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기쁘고 고마웠다.
일반 사회인이 부러워하는 방학이 ‘노는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연수기관에서 전문성 함양을 위한 연수에 열중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학교단위의 독서캠프와 영어캠프, 수련활동 지도 및 학부모 교육 지원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또한 전국의 유명 관광지나 휴양지에서는 우리 학생들의 탈선과 비행을 염려하여 교외합동 생활지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실 선생님들은 이와 같은 것에 대하여 누가 알아주거나 인정해 주는 것과는 별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방학과 관련하여 교사들이 ‘그저 먹고 논다’는 식으로 폄하하여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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