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시된 교장공모제는 선출과정의 비민주성과 편파성으로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학교현장을 4년마다 교장 선출을 위한 각축장(角逐場)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교장의 자격 요건 및 연수 체제를 강화하여 개방적 리더십과 혁신적 마인드를 갖춘 교장을 배출하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교장공모제 도입 취지는 ‘학교장의 개방적 리더십을 통해 학교발전과 교직사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기존의 연공서열 위주의 교장 승진제도가 학교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의 온당함이나 진실성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당초 교장공모제는 현행 승진제도의 틀을 지키면서 전문경영인, 대학교수, 일반인 등에게 교장 자격을 주어 특성화학교 및 혁신학교 등에 시범적용을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해 가는 방식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시행되고 있는 교장공모제는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일반교사를 대상으로 한 무자격 교장공모제를 끼워 넣어 교직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최근 교장공모 결과 55개 학교에서 후보자를 최종 선발하여 발표하였지만, 언론에서는 ‘교장 임기만 늘려준 교장공모제’, ‘준비 부실한 교장공모제’ 등의 비판적 기사를 내기도 했다. 교장공모제의 졸속 시행으로 교육가족과 국민의 따가운 질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또한 선정과정에서 보인 비민주성, 편파성은 이 제도의 확대 시행에 심각한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들
단위 학교와 지역사회 실정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여 학교현장을 활성화시키고 교육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선발과정에 나타난 파행은 제도 시행의 초기에만 나타날 수 있는 일시적 혼란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매우 심각하다. 교장의 권위와 리더십 상실은 물론이고 교육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 부각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교장공모제가 갖고 태생적 한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학교 현장의 ‘정치장화(政治場化)’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실시된 교장공모제에는 학연과 지연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지자체의 의원이나 단체장까지도 동원되었다고 한다. 학교운영위원회의 교사위원과 학부모 위원의 갈등으로 교장공모를 취소한 지역도 있다. 학연과 지연, 또는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사람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림속의 떡’이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들린다. 교장공모제로 교장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더욱 심각해진다. 아이들의 교육에 전념하기보다는 학연과 지연 등과 연계된 행사에 적극 참여해야 하고, 소위 ‘줄 대기’에 급급해야 한다고 한다. 이 제도가 확대될 경우를 상정해 보면 참으로 걱정스럽다. 전국의 각 학교가 4년마다 난리를 치러야 하고, 교원이나 학부모 조직의 파벌 형성은 물론이고, 금품 공세 등의 파행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2세 교육에 전념해야 할 학교 현장을 교장 선발을 위한 각축장(角逐場)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다.
둘째, 교장의 임기만 늘려주는 것이 꼴이 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현행 교장 임용제도에는 중임제(4년 중임, 총8년)를 두고 있는데, 중임제에 걸려 명예퇴직을 하거나 정년까지 남은 4~6년을 원로교사로 근무해야 할 처지에 있는 교장들의 임기를 늘려주는 것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지역에서는 현직 교장들이 전원 공모교장에 선발됨으로써 이와 같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교장의 임기 연장의 수단으로 교장공모제를 활용하고 있다면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여 학교를 활성화하려는 애초의 계획은 그럴듯한 수사에 그치고 만다. 지금까지 추진해 온 초빙교장제의 경우도 대부분 중임제에 걸려 있는 교장의 임기 연장의 방편으로 활용되었을 뿐, 뚜렷하게 가시적 성과를 내놓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셋째,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현행 승진구조를 왜곡하고 교원조직을 크게 이완시킬 것이다. 이번 교장공모제와 관련하여 62개 학교 교장공모제 신청 결과 전체 272명의 응모자 중 189명이 평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이는 전체 69.5%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장이 되고자 하는 교사의 열망이 얼마나 큰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사가 승진하기 위해서는 20년 이상 근무해야 함은 물론이고, 10년 동안 근무평정에 매달여야 하고, 보직교사, 연구점수, 연구학교 운영 등의 가산점을 얻어야 한다. 이처럼 현행 승진제도는 교사에게 무한의 노력을 강요하면서 한쪽에서는 무자격 교장공모제를 통해 교장이 되게 하는 구조가 온당한지 묻고 싶다. 사실 몇 명의 학교운영위원을 지지층으로 확보하면 일거에 교장이 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매력적인(?) 제도이다. 교사로서 업무와 본질적인 역할이 같은데 승진 방법을 달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교원조직의 시스템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교단교사로서 최선을 다하여 교감 승진을 한 사람과 무자격 교장과의 관계는 그 모양이나 역할로 보아 바람직하지 않다.
넷째, 무자격 공모제의 경우 교장의 리더십과 전문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교장으로서의 전문성은 교단 교사로서의 경험과 교감으로서의 중간관리 경험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특히 교감의 중간 관리 경험이 없는 사람의 리더십은 전체 구조를 살피지 못함으로써 그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지역공동체를 아우를 수 있는 경험부족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교장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전문성이나 리더십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장을 교사와 특별히 다를 것이 없게 만드는 제도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교장의 지도력을 약화시킴은 물론이고 공모교장과의 동년배 이상의 교사 집단에게 ‘교장 무시’의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많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실제로 무자격공모를 통하여 교장을 선발한 학교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많은 교사들이 무자격교장을 피하여 자리를 옮긴 일도 있다. 4년 후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야 하는 교장에게 특별한 권위나 존경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장의 비전과 철학을 드러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개방적 리더십 함양에 적극 지원해야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이나 권위가 약화되면 가정교육은 자연스럽게 약화되는 것처럼 학교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교장에게 단위학교의 책임자로서 높은 책무성과 함께 상응하는 권위가 주어져야만 수준 높은 교육을 실현해 낼 수 있다. 학교현장을 정치장화하고, 임기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교장공모제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또한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교육의 본질적인 측면과 구성원의 정서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학교 현장을 활성화시키기보다는 이완시키는 제도에 불과하다. 교장을 현장의 개혁의 선도자로, 변화의 주도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장 양성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교장의 자격 기준을 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교장은 교육에 대한 전문성과 개혁적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 2세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장이 정치적 지향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본질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에 모범을 보여야 하고, 중간관리자로서의 교감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 이는 교원평가 체제와 연계하여 우수한 교육적 자질을 갖춘 사람이 교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전문성과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는 연수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학교장의 개방적 리더십을 통해 학교발전과 교직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교장을 변화의 선도자, 개혁의 중심인물로 만들어 가는 연수체제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일반 공무원의 경우는 사무관 승진을 하게 되면 약 3개월의 직무연수 통하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최소한 6개월 정도의 연수를 통하여 학교 경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현행 교장 자격연수 6주도 부족한 실정인데, 무자격공모제의 교장은 약 열흘 정도의 연수를 시킨다고 하니 그 논리적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교장 업무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이다.
셋째, 교장의 재임용(중임) 제도를 엄격하게 활용해야 한다. 학교 현장을 활성화시키고 교육력을 제고하는 특별한 노력이 없으면 재임용이 어려운 구조로 개선해야 한다. 물론 이는 교원평가체제와 연관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 교원평가 체제와 연계하여 변화지향의 리더십과 전문성을 갖춘 분이 중임되도록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제한적으로 특성화학교의 경우는 개방형 공모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해당 전문 분야에 식견과 리더십을 갖춘 교장을 선발하여 배치하는 방안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번에 도예고등학교의 교장 공모처럼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분을 초빙하는 것은 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교장공모제의 공과에 대하여 성과를 논하기에는 분명히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이는 기본을 흔들어 놓은 제도로 학교 현장 조직을 활성화시키기보다는 대립과 갈등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기존의 승진구조가 승진에 매달리게 하여 교육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많지만, 앞으로 도입될 다면평가와 평가결과의 공개는 그 동안에 잘못 운영된 평가체제를 충분히 보완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승진제도와 병행하여 무자격 교장공모제를 시행하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을 지어 혼란을 양산하는 것이 될 것이다. 10년 근무평정으로 교원의 직무충실과 노력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일반교사를 어떤 제한도 없이 교장이 되게 하는 제도는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학교현장을 활성화시키고 교육발전을 촉진하는 개방적 리더십이 좋다하여도 구성원의 갈등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제도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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