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글의 대부분이 부드럽다. 그리고 잔잔하다. 파고가 없기에 밋밋한 느낌마져 준다. 교육계에 관한 많은 사건 사고가 있지만, 그 사건을 기사화해 내기에는 여전히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있는 듯하다. 교육 현장에서 교실을 들여다보아도 학교를 관찰해 보아도 어딘지 옛 교육의 구수한 냄새보다는 고도의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세련미와 자유 발랄한 품격을 자아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속에서 현대판 교육은 지식을 전수하면서 동시에 지식에 메스를 가하여 비판식 토론 교육을 통해 대상에 대한 옳고 그름을 밝혀 나갈 때 학생들의 그릇된 태도도 고쳐지지 않을까?
참다운 비판 교육 되살아나야
수업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착각을 할 정도로 학생들이 비판적일 때가 많다. 혹 그래서 너무 가혹하게 대하기에 그런가 하여 완화하는 태도를 취하면 학생은 교사를 조롱하려고까지 한다. 학교에 대한 비판이 높아서인가 하여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사에 대한 불만이 높아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해 본다.
그것도 다른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니 것 같다. 학생들이 비판적 시각으로 사고가 뻗어가는 것은 어느 하나에 한정되어 나타나는 불만은 아니다. 이들의 불만을 없게 하려면 그들이 하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 그렇게 될 때는 수업이 수업다운 형태로 전개되지 않는다. 그러면 적절한 수업은 무엇이겠는가? 요즘 수업의 적절함은 자는 학생은 자는 학생대로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수업을 이끌어 나갈 때 수업에 대한 불만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은 아닌 지.
좋은 교사가 되는 길은 좋은 수업을 하는 것이다라는 구호가 인터넷에 유행어처럼 떠돌고 있다. 과연 좋은 수업은 흥미 위주의 수업에 한정되어 있는가? 수업도 학생과 교사가 조화를 이룰 때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학생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될 때 수업은 학생의 의도에 조금만 맞추지 못할 때는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요즘 학생들은 자기에게 잘해주면 불만을 표출하지 않지만, 자기에게 약간의 체벌만 가해도 불만을 표출하곤 한다. 게다가 수업이 어떻고, 인간성이 어떻고 등 교사에 대한 폄하를 예사로 내뱉곤 한다.
학생의 불만이 비합리적이고 교사의 수업이 학생들을 좌우하지 못할 때 진정한 교실 수업은 난맥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을 과감하게 불식시키고, 교육에 대한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강조해 나가기 위해서는 바른 토론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그릇된 인성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는 참다운 비판식 교육 풍토의 조성이 아쉽다. 더욱 거칠어지는 학생들의 태도에 교사들의 거친 말과 태도는 궁극적으로 거칠게 나아가는 학생이 되도록 하는 결과가 된다.
교실 수업 고소장 수업으로 바로잡아야
요즘 학생들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학교에서 학생지도 벌점 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미 전국의 여러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그릇된 태도를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는 카드는 교사들이 그렇게 많이 애용하고 있지 않다. 그냥 회초리 한 대로 그치고 한 번의 꾸지람으로 넘어가곤 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교사의 벌점 카드 사용에 그렇게 조심을 하지 않는다. 교실 수업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바로 가려 주는 고소장 수업을 과감하게 도입하여야 한다.
갈수록 거칠어지고 갈수록 자기 제일주의 사고에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하는 이들의 자세를 바로잡는 것은 바로 비판식 교육을 통한 주체성 있는 학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현장 교육에 관한 글을 쓰는데 있어서도 좀더 날카로운 글로 오늘의 교육에 과감한 메스를 대는 풍토 조성도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