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경기도 양평의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 시를 쓰며 아이들에게 전해 줄 동화를 쓰는 시인이 있다. 칠순을 다 바라보는 나이의 최하림 시인이다.
최하림 시인은 동화를 쓰는데 창작 동화가 아니라 전래동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써서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하림 시인이 쓴 전래동화 시리즈는 18권이다. <부마를 잡으러 간 두 왕자> 1권을 시작으로 해서 현재 제 18권인 <토목공이와 자린고비>룰 출간했다.
최하림 시인이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는 기존의 전래동화와는 또 다른 맛을 준다. 이야기의 내용이야 기존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인의 말처럼 문학적인 맛을 덧붙이고 서사적 구조를 새롭게 하여 나름의 해석적 시각을 동화 속에 넣었기 때문이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동화를 쓰는 일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괴테나 톨스토이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썼다. 지금도 많은 시인 소설가들 중엔 동화를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전래동화를 시리즈로 계속해서 낸 경우는 드물다.
사실 시인이 동화를 쓰기 전에 발표했던 시들에서도 동화적인 냄새는 있었다. 시인의 시에선 유독 자연과 관련된 시어들이 많다.
숲속으로 들어갔어요 / 뭉게구름 같은 숲속으로요 / 햇볕이 강한 날인데도 / 빗방울 하나 들어오지 못하고 / 나무들이 숨막히게 들어차, 가느다란 / 신음이 터져나오더군요 처음에는/
<하략>
-<날마다 산길1> 중에서, 최하림-
-양평엔 언제부터 사시고 있는지요?
6년 됐지요. 원래 시골에서 자라서 시골이 좋아요.
-전래동화 시리즈를 쓰게 된 동기는?
글쎄요. 아이들에게 우리 동화를 통해서 우리 만족의 혼이랄까 뭐 그런 것을 심어주고 싶은 생각도 했지요. 사실 시인이 동화를 쓰는 경우는 다른 나라도 흔하지요. 그런데 그 동화가 창작동화도 있지만 전해 내려오는 전래동화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경우도 있지요. 난 기존의 동화를,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좀 더 문학적인 구조를 갖추어서 말에요.
- 언제부터 우리 전래동화에 관심을 같게 됐는지요?
아마 70년 후반부터 관심을 같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기회가 되어 아마 90년대부터 쓰기 시작했지요.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이천사년부턴가.
-상당히 오랜 기간 동화를 쓰셨는데 앞으로 몇 권까지 쓰실 생각인지?
20권 정도에서 끝낼까 해요. 30권 40권 이런 생각도 있었지만 힘이 많이 들어요. 내 나이 곧 일흔을 바라보아요. 그래서 스무 권 정도에서 마칠까 해요.(참고로 최하림 시인은 현재까지 18권의 <구수한 옛날이야기>란 이름의 전래동화 시리즈를 내고 있다.)
-우리 전래동화만의 맛이 있다면?
맛이란 게 있을까봐만…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요. 전래동화엔 만화적인 상상력 같은 것들이 있어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넘치게 해줍니다. 공기방울처럼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상상의 세계를 뛰어놀게 하지요.
-<단 방귀 장수> 같은 동화는 처음 듣고 읽는 것인데 이야기 수집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지금까지 전래되어 온 이야기도 있고, 북한에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도 있지요. 새로운 동화는 여러 지역에서 편찬한 ‘지역사’에서 찾기도 해요. 각 지역사에 보면 전래동화가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해 동화를 씁니다.
-자료 수집하는데 힘이 많이 들겠는데요?
뭐 그렇지.
- 혹 손자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신 적이 있는지요?
손자가 다섯 살이에요. 그래서 주로 이웃 아이들에게 들려줍니다. 가끔 책에 싸인 해서 주기도 하지요. 그러면 아주 좋아해요. 예전에 제자 하나가 딸아이를 데리고 와 그 제자의 딸에게 싸인 해서 선물하자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선생님의 시 이야기 좀 할게요. 선생님의 시를 읽고 나면 눈을 감고 가만히 음미하게 합니다. 선생님 시의 특징 같은 게 있다면?
내 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마음의 파동입니다. 울림이지요. 빛이나 나무, 바람 하나에도 어떤 파동 같은 걸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이지요. 그래서 그림 같은 묘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림을 읽고 가만히 음미하면 잔잔한 울림이 있는 시를 쓰려고 했지요. 김 선생이 그걸 느꼈다면 고마운 일이고요.
-선생님의 시를 보면 자연과 가까이 하려는, 함께 하는 마음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이 ‘전래동화’를 쓰게 된 것과 관련이 있는지요?
특별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나 동화나 자연에 대해 눈을 열어 놓고, 마음을 열어 놓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봅니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때 시든 동화든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니까.
-혹 새 시집을 낼 계획은 있으신지?
아직은 없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담긴 구수한 동화를 읽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아요. 그러나 같은 길만 가게 해선 안 되지요. 골목도 새로운 골목을 보고 걸어야 흥미가 있어 합니다. 저 골목엔 어떤 동물이 있을까? 어떤 꽃들이 있을까? 하고 흥미를 보이지요. 그렇듯이 새로운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난 아이들이 새로운 책 속으로, 항상 새로움 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충만함이 가득한 새로움 속으로 들어갈 때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꾸고 희망의 길을 가게 될 거라 봐요.
시인의 목소리는 나이보다 훨씬 젊었다. 조용하면서도 정감이 있는 목소리였다. 맑은 볕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전화가 아닌 직접 얼굴을 뵙고 차 한 잔 하며 이야길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
최하림 시인은?최하림 선생님은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고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사모님과 두 분이 살고 있다.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신문사와 잡지사에 근무하기도 했고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재작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풍경 뒤의 풍경> 등이 있고 김수영 평전인 <자유인의 초상>을 쓰기도 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서 <즐거운 한국사> 시리즈를 펴내기도 했다. 2005년도엔 올해의 예술인상 문학부문에서 최우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그밖의 여러 시집과 평론집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