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강조 속에 일그러진 교육현장

2007.11.12 20:14:00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국민 의식 수준에 비해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고, 소송이 난무하는 나라라고 한다. 무엇하나 하려고 해도 인권 문제와 연관되어 쉽게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인권의식이 함양된 것은 사실이다. 또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주로 부각된 문제는 사법기관에 의해 야기된 인권침해에 집중되었으나, 최근에는 학교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학교현장에서는 교육적 차원을 넘어 지나치게 ‘인권’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떤 이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학교’라는 극언을 하기도 한고 있다. 이는 우리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의 잘못이나 일탈행위에 대하여 지도하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인권적 배려가 충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자책과 반성을 통해서 철저하게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적 측면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권’만을 강조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역할과 기능을 위축시키는 사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체벌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체벌 규정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각 학교에서의 체벌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확대 해석하여 체벌을 해도 되는 것으로 오인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부에서는 학생 체벌과 관련하여 교사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대처하면서 정작 체벌을 야기하는 문제 학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지도해야 한다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사의 지시에 아랑곳하지 않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학생들을 지도할 특별한 방안이 없는 것이 오늘의 학교 현실이다. 안하무인격의 학생과 학부모가 한 학급에 한두 명만 있어도 그 교실의 교육활동은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만다. 이를 보다 못해 교사가 나무라거나 체벌이라도 하는 경우에는 사회적 비난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이 일어나기도 한다.

선도위원회나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의 의결 사항도 무시해 버리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어도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 하나 내 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항상 최후의 피해자는 교사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언제까지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 하나 없이 말로만 학생지도를 해야 할 것인가 걱정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공권력이 크게 위축되어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어쩌면 대안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학생지도에 대한 학생이나 학부모의 불만이 야기되면 학교현장은 심각하게 위축되고 만다. 어떤 선생님도 자신 있게 학생지도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차라리 조금 힘들지라도 그냥 조용히 지나가면 된다는 식의 편의주의가 횡행하게 된다. 학생이 말을 듣지 않아도, 공부를 하지 않아도, 예의 바르지 못해도 특별히 지도해야 할 교육적 소신은 꺾이고 말았다. 어쩌다 잘못되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물론이고 교사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당국에서는 여론에 편승하여 교사의 잘못은 잘도 따지면서도 학교현장의 학생들의 일탈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도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지도 방안과 징계 규정을 마련하여 엄정하게 지도하여야 한다.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여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최근 대통령후보자들이 GDP 6%의 예산을 확보하여 우리 교육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학생 지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교육력을 극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두발 문제 또한 심각하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학생들의 전화가 걸려온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벌을 준다든가 또는 머리를 깎고 오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최근 교육부에서는 두발 문제를 학생의 인권 문제로 차악하여 이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으로 전국의 각 학교의 두발 규정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사실 최근 각급 학교의 두발 규정은 몇 해 전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이 함께 논의하여 만들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를 잘 지키고 있으나, 소수의 몇몇 학생들이 이에 대하여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교육부나 정부에서는 학교 구성원의 합의하여 만든 제도에 대하여 학생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권 문제로 부각시켜 학생과 국민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를 인권 문제로 곡해할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만든 규정을 함께 준수하도록 선도해야 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이러한 현실을 비아냥거리면서 “떼법공화국”이라고 한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누구든지 우르르 몰려 들어 떼를 쓰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다 우리 사회에는 어느 곳에도 원칙이 없다. 상황논리에 따라 신축성(?) 있게 잘 대응하면 그만이다.

‘교육’의 의미는 피교육자에 대하여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의도적인 계획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교육에는 억지가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원칙과 교육적 배려가 적용되어야 한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잘못과 일탈에 대한 적절한 지도를 적시에 해야 하는 당위성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이 만든 규율이 특정 개인에게 맞지 않다고 하여 당장 뜯어 고치려고 하는 것은 민주적 원리에도 맞지 않다.

최근 우리 교육 현장에서 교권이 상실되고 있는 원인도 이와 같은 원칙이 없이 좌우되는 현장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학교 현장에는 교육적으로 옳고 그른 원칙이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국민으로서, 학생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만이 ‘인권 보호’라는 우산을 쓸 수 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인권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과대망상주의자들이다. 학생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도할 수 있어야 우리 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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