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모 고등학교 교사가 죽도(竹刀)로 학생을 때리는 장면이 인터넷으로 공개됨으로써 항간에 화제로 떠올랐다는 뉴스는 이미 보도된 바 있다. 어느 교실을 들여다 보아도 해밝은 얼굴에 배움을 향한 의욕으로 가득차야 할 것이지만 요즘 학생들의 학구열은 그렇게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담임이 잘못한다고 꾸짖고 매라도 한 대 때리면 즉시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심지어 좀 더 심하게 학생을 다루면 가방을 싸서 교실문을 꽝 소리내어 닫고 나가 버리는 현실을 목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회초리 사랑은 학생지도의 타이름의 경계
사랑이 교육의 최고다라는 말은 참으로 참진리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도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사랑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학생을 지도할 때도 학생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지도를 달리하여야 한다. 사랑이 교육의 기초를 다지는 지름길도 되지만, 사랑 속에 자리잡아야 할 타이름의 경계를 분명하게 주입시켜 두어야 한다.
수업 시간에 통제를 느슨하게 하면 수업 시작과 동시에 화장실에 가는 나쁜 버릇을 만들어 주게 되고 수업 중에 물을 마시러 가는 버릇조차도 발생하게 된다. 한 시간의 수업이 바로 되기 위해서는 한 시간에 주어진 학생들의 바른 태도를 먼저 제시해 두어야 사랑과 타이름의 경계는 교사의 등가물(等價物)이 된다.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는 권한이 사랑과 타이름이라고 한다면 사랑을 위해 주어지는 학생들의 바른 의무를 확고하게 심어 주어야 하고 타이름의 경계를 바로 인식하려면 학생의 잘못을 바로 지적하고 분명하게 처벌할 수 있는 두렷한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처벌을 위해서 교사가 존재하기 보다는 사랑을 위해서 교사가 필요하다는 위상 정립은 교사 자신이 만들어 가는 노하우의 입김이라는 것도 교사 자신들은 잘 안다.
하지만 감정을 이성으로 억제하고 이성을 감정으로 순화시켜 표출하는 정의의 사도 정신이 바로 표출될 때 교사의 위상정립은 일어나고 학생의 바른 태도는 되살아 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논리적인 과정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교사들의 학생에 대한 과도한 지도가 무리를 일으켜 학생들로 하여금 새로운 폭력을 불러 일으키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매는 자제될 필요가 있다.
타이름의 매와 사랑의 매는 학생지도에 필요악으로 존재하는 교사의 등가물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체벌을 금지하라고 하지만 회초리의 모든 금지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바른 지도가 필요할 때에는 바른 회초리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바른 회초리라 하더라도 때로는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교사의 바른 학생지도의 정당한 행위였다면 정의의 손은 교사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남의 아들 딸을 그 누가 함부로 다루겠는가? 교사라면 그래도 바른 지도를 거울삼아 살아가는 존재임을 교사 자신은 내면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본다.
상담은 사랑으로 학생지도는 타이름으로
요즘 학생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상담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학생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잘할 것 같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들이 돌아서서 교실에서 하는 행동은 아리송할 만큼 모호한 행동을 한다. 언제 상담을 받았느냐 싶고 언제 지도를 받았느냐 싶다. 사랑과 타이름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 하는 것이 오늘의 교사가 처한 등가물은 아닐 지. 차가운 겨울 날씨에 창에 어린 아름다운 성에를 보면 미소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