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능이 끝나고 수시 2-2에 서울 모 대학 모 학과에 1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하였다. 너무나 놀라 그 대학의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전학과가 50대 1은 기본으로 돼 있을 정도였다. 무엇이 이런 소동을 불러 일으켰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묻지마 지원학과를 선택하게 하였을까? 예전 같으면 인기없는 학과라고 하여 지원율도 높지 않았을 터인데 이렇게 많은 학생이 지원하는 이면에는 불안으로 인한 사전 포석도 있겠지만 중위권 학생들이 서울에 붙고 보자는 마음이 더 높은 것으로 추측된다.
소신있게 지원하자니 브랜드 대학에 밀려 한숨짓고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느 수험생 치고 없겠느냐만은 시골 학생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려고 하면 그 비용이 무시할 수 없게 많이 소요된다. 또 수도권 학생이 지방에 내려가 유학을 하자고 하니 수도권에 있는 것보다 과외로 소비되는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이 필요하게 된다. 이래 저래 중간 로선을 타고 달려가는 수험생 인생의 열차는 수험생을 정차하는 역마나 한명씩 한명씩 내려 놓고 마지막 종착역에서는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수험생에게 떠나는 열차의 기적 소리는 처량하게만 들려올 뿐이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의 말씀만 잘 듣고 그래도 학업에 열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할 때는 이미 지나간 시간의 초점들이 아쉽기 마련이다. 학교에서는 자율학습 시간에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학습할 것을 주문하지만 그것은 당시의 소리뿐 현재에 들리는 소리는 어떻게 하면 행운의 여신이라도 만나 붙을 수 있는 학과에 지원하게 해 달라고 하는 그런 마음이외는 없는 것이 수험생이다. 이런 불안이 결국은 “붙고 보자” “묻지 마” 학과에 지원하게 되고 그 결과는 대학 입시 사상 초유의 경쟁률을 만들어 낸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하면 그 누구 이런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IMF 이후 우리 사회의 젊은이에게 불어 닥친 한파는 취업의 불안이었다. 그래서 철밥통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은 과거가 어쨌건, 오늘의 보수가 어쨌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고픈 젊은이의 무사안일주의가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직장이 안전하니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모두 지원하였다 그래서 경쟁률이 높았다고 생각하면 단순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젊은이들의 진취적 기상은 사라지고 보신주의로 흘러간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대학입학 경쟁률에서 느끼는 비애의 슬픔이 공무원 시험에서 느끼는 보신주의 풍조와 무어 다를 바 있겠는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살아가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노인같은 젊은이의 모습에서 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대학의 전통, 학풍이냐? 브랜드냐?
소위 인류대학, 얼리트 학생이 다니는 서울의 브랜드 대학의 학풍은 그들이 만들어 가는 내면의 자정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질까? 아니면 브랜드 자체가 지니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을까? 어느 것이라고 대답하기에는 어렵다. 대학의 학풍은 그 대학이 이어 내려오는 브랜드에 의해서 일 수 있고, 그 대학의 브랜드는 그 대학의 학생들에게 강한 자의식을 부여해 주는 힘을 갖게 해 줄 수 있다. 그러기에 외국의 명문 대학들의 자부심은 그만큼 강하게 타인에게 어필되는 것이다.
따라서 명문 대학을 만들어 가는 것은 대학의 주인인 학생과 교수 그리고 대학이 갖추어야 할 자질들의 융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대학을 선택할 것인가에 수험생들은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지원하고 그 소신이 그 대학을 일류 명문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때 대학생은 오늘의 문화인으로서 지성인의 대열에 서서 참다운 교양인다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조기철 인천 초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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