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어느 듯 자신도 모르게 로봇 교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게다가 원로 교사에 가까운 나이에 있으면 더욱 그러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담임도 없고 자신이 연구하려는 뚜렷한 과제도 없을 때는 무료한 시간이 자신의 세월을 낚는 낚싯대와 같은 것은 아닌지 하는 사고의 무력감에 빠지기 싶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한 권의 잡지가 아닐까? 교사이기에 교육 잡지를 구독하다 보면 지나간 그림자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어 회상의 경지로 빠져들게 하는 좋은 자료가 때로는 되기도 한다.
학생을 가르친다고 교과서 교재를 연구하다 보면 교과서대로 가르치는 시간에는 학생들이 자는 경향이 늘어날 때가 많다. 가르치면서 유머를 석어가는 미담은 한 권의 잡지에서 얻은 글들이 된다. 학생들이 재미없어 할 때나, 학습에 무관심으로 일관할 때는 추억의 소리가 이들의 머리를 깨어 있게 하는 좋은 자료도 된다.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 가는 데는 말로 가르치는 교사라 할지라도 말보다는 소리가 더 필요할 때가 있고, 소리보다 그림이 때로는 더 필요할 때가 있다. 학습법이 좋아야 학생이 졸지 않는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양질의 학생이 앉아 있는 교실에서는 교수법이 좋아야 되는 것보다는 바른 지적 교육이 더 그들에게 어필되어져야 좋아한다는 것도 느껴지곤 한다.
학생에게나 교사에게나 공히 필요한 것은 배움을 통해 욕구를 충족시켜보자는 의도는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교사는 가르침에 있어 게으르지 않고, 학생은 배움에 있어 싫어함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오는 궁극적 목적도 통과의례이기 때문이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얻어가는 지식의 담보물이 그래도 학교의 교사에게서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학생들의 모습이 예전의 학생들이 아니라는 것도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보면 다 납득할 만하다.
그렇지만 자라나는 세대들의 방종은 기성세대들의 울을 넘어서고 있다는 데에 우려를 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권의 잡지를 통해 스쳐가는 세대들의 모습을 정화해 내고 한 권의 잡지에서 얻는 미담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시켜 준다는 면에서 늘 읽는 한 권의 잡지는 교사의 눈높이를 자라나는 세대들의 눈높이로 따라가게 하는 지름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계가 시끄럽게 흘러가고 있음은 지상의 보도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보편화된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고 흘러가는 한 장면 한 장면에 체념으로 일관해 버린다면 그것은 교사로서의 본분을 저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래도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몇 걸음 안 되지만 이 시간에는 무엇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 한 학생도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으로 수업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어느 듯 발자국은 교실 앞에 와 있게 된다. 순간 잠을 자고 있는 반이면 UCC를 보여 주어 잠을 확 깨게 할까? 신나는 음악을 들려주어 잠을 깨게 할까? 그렇지 않으면 서서히 잠을 깨워 옛 이야기를 해 줄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회오리인 양. 한 권의 잡지에서 얻어진 영감으로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