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빠진 태안, 희망의 손길이 필요하다

2007.12.13 08:35:00

태안의 비극은 소리없이 찾아왔다. 지난 7일 오전 7시 30분경 홍콩 선적의 14만 6000톤급 유조선과 해상 크레인이 충돌하면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검은 원유는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던 태안반도를 순식간에 접어 삼키며 바다에 의지한 채 평화롭게 살아오던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교무실 내에서도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서 힘을 보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기말고사 기간이라 오전에 시험관리를 끝내고 오후 시간을 이용하여 자원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자발적인 봉사였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했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가로림만에 위치한 대산읍 벌천포 해안이었다. 이곳은 양식장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각종 어패류의 집산지나 다름없었다. 오일 펜스를 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기름 유입을 막으려 애쓴 보람도 없이 해안 곳곳에는 이미 검은 원유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매쾌한 기름 냄새가 차가운 바닷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전해왔다.

몇 분의 선생님과 함께 조를 이뤄 작업 위치로 이동했다. 해변에 구르는 조약돌과 굴 껍데기가 붙어 있는 바위 곳곳에는 검은 재앙이 내려앉아 인간의 욕심을 꾸짖고 있었다. 흡착포를 사용하여 일일이 기름을 닦아내는 원시적 방법으로 드넓은 해변에 비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여름이면 해수욕 손님들로 북적인다는 맞은 편 백사장에는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호미로 백사장을 파내고 있었다. 기름 범벅이 된 조약돌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평생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을 촌로는 넋이 나간듯 물끄러미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원시적인 작업마저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자원봉사를 왔다는 아주머니들도 작업을 정리하고 버스에 올랐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되돌릴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줄여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을 주민들도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기름 유출 사고는 보통의 재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차원이 다르다. 오염된 바다와 갯벌이 회복되기까지는 몇 년 아니 몇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12년 전인 1995년 여수 앞바다를 검게 물들인 유조선 ‘씨프린스호’ 좌초 사건의 흔적은 아직도 문신처럼 해안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한 번 사고가 나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해양 오염도 초기 방제에 따라 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더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절실한 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들은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힘을 모으고 아픔을 함께 나누며 위기를 극복했다. 멀게는 IMF 당시, 쓰러져가는 국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아이들 돌 반지를 들고 은행으로 향했고, 가깝게는 태풍 ‘나리’로 큰 피해를 입은 제주 시민들을 돕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달려갔다.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했지만 태안 지역의 주민들은 시꺼멓게 몰려드는 기름띠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내 생에는 더 이상 예전의 바다를 보긴 어려울 것 같다”는 한 어민의 탄식은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할 뼈아픈 고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기막힌 절망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태안의 해변은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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