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이 가장 싫어하는 회의는?

2008.04.03 14:45:00


누구나 부러워하는 학교장, 좋은 자리인 줄 알았더니 그만치 책임감도 무겁고 고민도 많다. '지금보다 더 좋은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때론 잠못 이루는 밤도 있다.

리포터는 가방(수첩)을 들고 다니는 교장이다. 출퇴근 때는 물론이요, 각종 출장 등에도 꼭 교무수첩을 갖고 다닌다. 리포터라서가 아니다. 30년이 넘는 교직생활 동안 기록이 습관화되었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 올랐을 때 기록해 둔 메모가 나 자신에게 또는 맡은 바 역할 수행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메모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리포터도 기록하기 싫은 것이 있다. 이런 회의는 참석 안 했으면 좋겠다. 기록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 괴롭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내리는 판단과 조치가 개운치 않기 때문이다. 아니 도대체 무엇이길래?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학교에는 각종 위원회와 협의회가 20여개가 넘는다. 정기적인 직원회(교직원협의회), 기획위원회(부장회의) 외에 학교운영위원회, 학년협의회, 교과협의회, 학업성적관리위원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학생선도위원회, 봉사활동추진위원회, 교재교구선정위원회, 인사자문위원회, 학교교육과정편성운영위원회 등.

이 중에서 학교장이 가장 싫어하는 회의는 우엇일까? 물론 선생님들도 싫어한다. 이 회의 때문에 담당선생님은 업무과중에 시달리기도 한다. 전임지 모 학교에서는 이 회의가 너무 자주 열려 다른 학교로 떠난 선생님도 있다. 바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회의를 총괄 준비하는 학생부장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사안 발생에 따른 근거자료를 준비하고 회의 소집 연락을 취하고 해당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학생부장을 3D 업종으로 꼽는지도 모른다. 회의록 작성도 한 두 페이지가 아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게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인데 방과후 학교밖에서 일어나는 것은 학교의 손이 미처 미치지 못한다. 평상시 생활지도를 잘해야 하는데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인지라 때론 우발적인 사고도 발생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러니 학교장의 고민은 커져만 간다.

교장 7개월만에 처음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가졌다. 외부에서 온 학부모, 경찰관 등 자치위원들에게는 부끄럽기만 하다. 문득 전임지 학교가 떠오른다. 연 29회를 열었다면 누가 믿을까? 저녁도 굶어가면서 밤 9시까지 강행한 적도 있다. 학교장의 괴로움은 얼마나 컸을까? 지역여건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건 학교가 아닌 것이다.

학교장은 검사나 판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교육자다. 그러나 현실이 재판장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엄격한 법률적 판단도 필요하지만 교육을 감안한, 학생의 미래를 생각하는 현명한 조치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엔 담당경찰관이 참석하여 전문가적 조언을 해 주어 사건이 원만히 해결되어 가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측도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조금씩 양보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구성만 해 놓고 한 번도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폭력, 교내에서는 물론 학교 밖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1,000 여명이 넘는 학생들은 뒤에서 걱정하고 있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마음을 한 번 정도만이라도 가졌으면 한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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