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 셈법보다 교육적 셈법으로 접근해야

2008.07.06 16:26:00

최근 한 학부모 단체가 교사가 공무원보다 1시간씩 먼저 퇴근하고 있어서 초중고 교사들의 퇴근 관행을 바꾸겠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세상이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왜 요즘 학부모님들은 선생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왜 선생님들의 마음을 슬프게 할까, 왜 선생님들을 자극할까?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 왜 교육의 특수성을 모르고 있을까? 학교의 여건을 모르고 있을까? 선생님들의 근무특성을 과연 알고나 있을까? 선생님들을 배려하는 것이 바로 학부모님들이 맡겨 놓은 자식을 배려하는 것이고,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혹시 잊고나 있지 않은지?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이라는 단체가 초중고 교사는 공무원보다 1시간 일찍 최근하고 있다. 공무원은 6시 퇴근하는데 교사들은 5시 퇴근하니 바로 잡겠다고 하는 것은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상식적 셈법으로 맞는 말이다. 그래서 ‘하루 1시간 X 초중고 교사 35만명 = 35만 시간’이니 이 시간 회수운동을 하겠다. 안 되면 직무유기 고발하고 손해배상청구하고...

이 보도를 보고 박수를 보내는 분도 있으리라 본다. 이들은 수학 공식에 대입하면 그렇게 된다. 공무원 잣대에 대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들에게는 수학적 셈법보다 교육적 셈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렇게 교육적 셈법으로 접근하지 않고 수학적 셈법으로 접근하니 당장 어떤 반응이 나오나? 좋다. 그러면 우리도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겠다고 나오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나? 당장 점심시간이 마비가 된다. 아무도 학생지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고가 나든 문제가 생기든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점심시간 이후로 미루고 말 것 아닌가? 선생님들도 인간적 계산으로, 교육적 셈법이 아닌 수학적 자기 셈법으로 점심시간에 좀 쉬어야 그 다음 시간 수업을 할 것 아닌가 하면서 편히 쉬려고 할 것이다. 아무런 부담도 없이.

그리고 아침 등교지도와 아침 청소지도, 자기주도적 학습지도 등이 다 망가지고 만다. 수학적 셈법으로 아침 9시까지 출근하면 되고 모든 지도는 그 이후에 하면 되니까. 그렇다고 학생들이 9시 되어서 등교하나? 그렇지 않다. 요즘처럼 해가 긴 날은 부지런한 학생들은 6시 반만 되면 학교에 등교한다. 학생들이 있는 곳에는 선생님들이 누가 있어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다고 가정해 보면 어떻겠는가?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는 일찍 등교한 학생들 교실에서의 아침 모습을 그려보라. 어떻게 하는지? 교실이 운동장이 되고 만다. 바로 장난터가 되고 싸움터가 된다. 조용히 앉아 하루를 시작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학생들 때문에 일찍 오는 게 고역이 될 게 아닌가?

옛날에는 교사들이 주번활동, 당번활동을 하기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이 일찍 출근을 하지만 요즘은 주번활동, 당번활동을 하지 않아 일찍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요즘은 옛날처럼 주번을 정해놓고 활동을 안 하니 어떻게 하나? 자기 교실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나? 자기 교실이 엉망이 되지 않기 위해 아침 조례를 시작하기 전에 교실에 와서 정리 정돈하고 쾌적한 환경조성을 위해 애쓰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는 교사가 몇이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작년에 리포터가 농소중학교에 근무할 때 담임선생님들은 8시만 되면 출근하여 교실을 둘러보고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을 지도한다. 비담임선생님들은 특별청소구역에 나가 청소지도를 한다. 요즘 학교를 개방하니 그 다음 날 학교에 오면 어떻게 되어 있나? 도저히 더러워서 못 본다.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지금도 학생부장을 비롯한 학생부 선생님들은 7시가 되면 출근하여 교문에서 학생들의 등교지도를 하고 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매일이다. 이런 분들을 보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그렇다고 시간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에게 찬물을 끼얹으면 어떻게 되겠나?

그리고 점심시간은 어떻게 하나? 선생님들은 점심시간에도 조를 짜서 학생들의 식당지도를 하고 있다. 1,000명이 넘는 학생들 급식지도를 하고 나서 시간이 남으니까 3학년의 경우 고입을 앞두고 자투리 시간을 교실에서 잘 활용하도록 담임선생님들께서 교실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지금도 식당이 비좁아 교실에서 점심을 가져와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한다. 정말 점심시간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있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힘들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상식적 셈법으로 선생님들의 퇴근시간 운운 하는 것은 선생님들을 정말 화나게 한다. 정말 슬프게 한다. 정말 마음 아프게 한다.

그러면 진짜 선생님들은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6시 퇴근하자고 할 것이다. 애들이야 일찍 오든지 말든지, 교실에서 장난을 치든지 말든지,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싸우든지 말든지. 점심시간에 밥을 먹든지 말든지, 점심시간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이후의 시간에는 모든 생활지도에서 손을 놓을 것이다. 그 때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 책임을 선생님들이 지라고 할 것인가? 그 책임은 오직 애들과 학부모님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발 부탁이다. 수학적 셈법으로 선생님들을 자극하지 말자. 힘들게 하지 말자. 마음 아프게 하지 말자. 가슴 아프게 하지 말자. 슬프게 하지 말자. 학부모님들은 진정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수학적 셈법으로 다가가지 말고 교육적 셈법으로 다가가자. 학교를 사랑하는 것이 학생들만 사랑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학생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들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 이야기를 하나 하고 마치고 싶다. 손주를 보고 싶은 시할머니께서 며느리가 애를 낳지 못하니 그렇게 구박하고 또 구박하고 하다가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때부터는 며느리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다고 한다. 누구 때문에? 구박하는 말 대신 좋은 말로 대하고 싸늘하게 대하는 대신 따뜻하게 대하고 좋은 음식 챙겨주고 일도 시키지 않고...왜 그러했겠는가?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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