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마다 신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지고 산속 깊은 계곡이 그리워지고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색깔로 마음을 사로잡는 바다가 그리워진다. 올 여름은 유달리 바다가 그리워진다. 왜 그럴까? 바다가 보통 때도 많은 것을 깨우쳐 주고 가르쳐 주건만 이번만큼 많은 깨우쳐 주는 때는 없는 것 같다. 바다는 넓이로, 높이로, 깊이로 가르칠 뿐 아니라 색깔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늦게나마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왜 사람들이 바다를 찾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바다는 예술가다, 미술작가임에 틀림없다. 온갖 색깔로 물감을 만들어가며 그림을 그린다. 무지개가 선보이는 무한한 색깔을 바다도 만들어낸다. 바다가 내는 색깔은 무한정이다. 어떤 때는 현미경으로 아주 가까이서 보아야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색깔도 선보이고 어떤 때는 망원경으로 아주 멀리서 보아야만 보이는 색깔도 선보인다.
오늘과 같이 맑고 깨끗한 날은 푸른 색을 낸다. 기분이 좋으면 더 좋은 청옥 같은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그것도 모자란다 싶으면 흰 색까지 섞어가면서 조화를 이룬다. 하늘이 푸르면 바다도 푸르게 화답하고 하늘이 회색으로 바뀌면 바다도 회색으로 마음을 같이 한다. 나무가 짙은 녹음으로 푸름을 나타내면 바다는 그에 걸맞게 짙은 푸르름으로 다가간다. 하늘이 시꺼멓게 변하면 바다도 역시 시꺼멓게 손질을 하며 하늘이 웃는 얼굴을 하면 바다도 화사하게 웃는 얼굴을 취한다.
동쪽 하늘에서 태양이 붉고 환하게 떠오르면 바다도 붉고 환하게 화답하고 태양이 구름 사이로 떠오르면 바다도 태양의 마음을 아는 듯 똑같이 구름을 그리고 태양도 그리며 같은 색으로 반응한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온통 붉게 물들면 바다도 온통 홍색으로 보답하며 아름답게 다가간다.
하늘이 우는데 바다라고 웃지 않는다. 남들이 우는데 돌아서서 웃지 않는다. 비아냥거리지 않는다. 순수하게 반응한다. 웃을 때는 함께 웃어주고 울 때는 함께 울어준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화답하고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한다. 함께 어울릴 줄 안다. 분위기를 읽을 줄 안다.
바다는 환경에 따라 알맞은 색깔을 낼 줄 안다. 아름다운 색깔로 화답할 줄 안다. 반응할 줄 안다. 즉각적인 화답이다. 즉각적인 반응이다. 더 좋은 반응이다. 더 나은 반응이다. 즉각적인 화답이고 더 좋은 화답이고 더 나은 반응이다.
나 같은 경우는 즉각적인 반응이 잘 없다. 때에 따라서는 즉각 반응을 하지만 어떤 느슨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예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다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반응을 가르친다. 즉각적인 반응을 가르친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가르친다. 그것도 어울리게 반응하도록 가르친다. 그것도 주위에서 요구하는 대로 반응하도록 가르친다. 그것보다 더 낫게 반응하도록 가르친다. 화창한 푸른 날씨 속에 찬란한 태양 아래 바다는 어떻게 반응하나? 녹보석 같은 맑고 푸른 색으로 반응하되 하얀 솜털도 함께 곁들어 선을 보이지 않는가?
반응을 하고 화답을 할 때마다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걸작품이 된다.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그 어느 누가 그린 그림보다 월등하다. 이렇게 되는 게 다름 아닌 바다가 만들어내는 색깔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내가 반응함으로 더 좋은 공동체의 색깔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바다는 색깔로 조화를 모르는 우리에게 조화를 가르쳐 준다. 주변의 여건에 따라 조화를 이뤄가며 살아가도록 지혜를 가르쳐 준다. 윗분들이 옆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때로는 분위기를 모르고 마구 지껄이며 떠들기도 하는데 분위기에 맞는 색깔을 내도록, 조화를 이루도록 조용히 타이르고 있으니 고마울 뿐이다.
떠오르는 태양이 있는데 푸른 하늘이 있는데 푸른 나무가 떠받치고 있는데 바다가 검을 색으로 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되겠나? 그림은 엉망이 되고 말 것 아닌가? 작품은 망가지고 말 것 아닌가?
학교라는 공통체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색깔이 어울림에서 벗어난다면 학교의 그림이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니 내가 내는 색깔이 어떠해야 할지 매일, 매일 실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으니 이번 여름에는 바다로~ 바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