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금요일! 주말을 이용해 몇몇 선생님과 더불어 설악산 대청봉에 가기로 했다. 인천에서 오후 6시경 출발하여 속초 오색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서둘러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5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산길을 모자에서 품어내는 불빛을 빌어 따라가기를 1시간 정도 되었을까 어둠이 가시고 밝은 산정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각자 등에 먹을거리를 짊어지고 오가는 사람들과 “안녕 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등등의 친교적 인사말을 나누면서 쉬어쉬엄 오르는 산길은 양쪽에 펼쳐진 아름다운 절경에 걸음을 멈추기를 여러 번 아쉬운 발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등산길에서 취사 금지와 쓰레기 투석 금지 캠페인 운동이 너무 잘 이루어져 개울에 흘러내리는 물은 수정처럼 맑았고, 한 그루 한 그루 마다 서려 있는 가을의 정취는 여인의 얼굴에서 풍겨나는 향수보도 향기로웠고, 시장기에 먹는 아침 죽은 더욱 입맛을 돋우었고, 먹고 난 후 가벼워진 배낭은 등정을 더욱 산듯하게 했다. 맨들맨들하게 다듬어진 등산길에 나타나 재롱부리는 다람쥐들은 잠시 피로한 기미를 덜어 주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소나무들의 차림새는 세찬 바람에 견디어 내지 못해 잎은 얇을 대로 얇아 있었고, 잡목들은 마치 정원을 꾸며 놓은 듯 세찬 바람에 난쟁이처럼 자라고 있었다.
바람없던 산행이었지만 대청봉 정상에 이르자 바람은 흐르는 땀을 한 순간에 씻어내고 순식간에 추움으로 몰아세웠다. 등산객들이 서로 대청봉 팻말을 안고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면서 기다리는 모습도 진풍경이었다. 언제 힘들었느냐는 듯이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마다 웃음을 표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연과는 너무 다른 두 얼굴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꾸밈새 없이 보여주는 수목들의 구성이 소설의 구성 방식과는 다르다고 하나 대 산야의 정상에서 보여주는 산세의 차림새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정상에는 잡목들이 그들만의 군락을 이루어 균형을 유지하고 있고, 절벽의 아슬아슬한 돌포갬을 감싸주는 소나무의 강한 기개세는 주변을 스쳐가는 편리와 안락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인 나를 충고하는 듯했다.
대청봉이 최정상에 자리잡고 있지만 대청봉은 그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는 위대한 자부심을 보여주기 보다는 아래로 펼쳐져 있는 울산바위, 비선대, 귀면암, 사자바위는 대청봉을 수비하는 호위병 같았고, 그 아래로 아늑하게 자리잡은 속초시는 신선의 거처인 양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늘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하나의 소실점인 푸른 바다 저편에 행글라이드를 타고 마음껏 날아가고 싶은 충동초차 일어나게 했다. 산과 산이 연이어 펼쳐져 있는 장면은 철의 장막으로 에워싼 위엄을 과시하고 있는 듯 웅장하고 근엄했다.
산이 주는 교훈은 산 자체가 아니라 산의 정기가 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그러기에 대청봉을 찾는 것은 대청봉이 최고봉 때문이 아니라 최고봉을 에워싸고 있는 장엄한 자태를 보기 위한 것이다. 굽이굽이 펼쳐지는 산과 산 능선들이 펼쳐내는 열병식은 자연의 품평회를연출하였고, 곳곳에 펼쳐져 다양한 모양새를 선보이는 돌기둥과 돌부리들은 산을 찾은 등산객에게 산이 무엇을 말하고 가르치는 지를 암시하는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임에는 틀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