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은 과연 쓸모없는 덕목인가?

2008.10.06 22:08:00

얼마 전 모임에서 모 사립고 교장이 초임교감 시절 당국에서 금지하는 사설모의고사를 보다가 수모를 겪었던 일을 말했다. 재학생의 신고를 받은 도교육청은 해당 학교 교감에게 고사 금지를 재강조했다. 학교는 시험을 강행하고 시험본다는 사실을 교육청에 팩스로 보고했다. 장학사가 출동, 증거물을 압수하고 교장을 비롯한 관계자 6명의 경위서를 받아갔다. 교감은 교장과 함께 교육청을 방문하여 장학관으로부터 질책을 듣게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교장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고 한다.

모의고사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사실대로 보고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정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시험 당일, “우리 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습니다.”라고 양심만 속였어도 장학사 출동, 경위서 제출, 도교육청 호출 등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 당시 사실대로 보고한 관계자가 오히려 당당해 보이고 교육자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교육기관에서는 거짓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거짓보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당시 학생을 위하여 모의고사를 보았다면, 그것이 학교의 방침이라면 수모를 당하든 징계 조치를 당하든 사실대로 보고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있다. 요즘엔 ‘정직’이라는 가훈도 찾아보기 어렵다.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면 거짓말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하다고까지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심지어 CEO 직무연수의 모 강사는 나쁜 일로 조사를 받을 때 “절대 아닙니다” “잘 모릅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의 3단계 답변 예시를 알려주며 증거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버티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국정원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0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위증으로 기소된 사람이 1,198명인 반면 일본은 5명인 것으로 나타났고 무고죄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도 우리나라가 2,965명, 일본은 2명에 불과했다. 양국의 인구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래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교통사고의 경우, 위증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뀌게 하니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모 대학 교수는 거짓에 대해 관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인을 포함한 지도자들의 거짓 언행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거짓말을 하고 양심을 속여도 세월이 지나면 그냥 잊혀진다. 때론 거짓말을 한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정직은 도덕성의 기본이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지도자로서 부적격이다. 부정직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이지만 우리 사회는 점차 속이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바람직한 현실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현명한 처세술이 정직’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어린 시절 ‘꿈속에서라도 거짓말을 하면 아니 된다’고 가르치던 선생님의 당당한 모습이 그립다. 학교에서 정직 교육이 필요하다. ‘정직’이라는 덕목, 문화선진국에서는 아직도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던데.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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