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교육복지국가를 꿈꾸며

2008.10.13 17:49:00

-학문의 길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흐트러지는 마음을 바로잡는 것일 뿐이다. -맹자

얼마 전 미국 내 유명 대학에 재학하는 한국 유학생들 중 절반 가량이 중도에 탈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어 충격을 주었다. 한국에서 유학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미국 내 명문 대학에 다니던 한인 유학생들의 44%가 중도에 탈락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는 지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신감보다는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아정체감이 성숙되기도 전부터 기계적으로 학력 향상의 틀에 묶여서 너나없이 명문 대학으로, 입시 지옥에 빠져 허우적대며 친구도 인간 관계도 사회적 책임과 배려는 뒷전인 채 성적에 대한 갈등은 큰 반면 이를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적응력에서 떨어지면서 탈락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오늘 나는 이같은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며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 흠뻑 빠졌다. 몇 시간에 다 읽어낼만큼 우리 나라 교육의 모습과 판이하게 달랐다. 부러움을 넘어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한 핀란드 교육의 성공 모습에 매료되었다. 가히 충격적인 책이다. 우리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만들고 있는 엄청난 교육비, 경쟁과 입시로 점철된 교육 현장의 모습을 핀란드 교육의 모습에 비춰 보며 '진정한 교육'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란드에서는 의무교육 기간인 16세까지는 학생들끼리 비교되는 시험도 경쟁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실시하는 국제학력조사(PISA)에서 최상위 성적을 올려, 바야흐로 세계 최고의 학력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시험과 경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문제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교육으로 뒤처진 사람을 중시하며 평등과 복지에 힘쓰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는 16세 전후까지는 '공부란 즐거운 것'이며 흥미와 개별성을 중시한다는 뜻이니 인간적인 교육 방법에 충실하다는 증거다.

핀란드는 1895년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학력별 반 편성을 전면 중지하였다. 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 특별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잘 못하는 아이에게 득이 되는것도 아니라는 분석에서 비롯되었다. 평등을 추진하고 경쟁을 배제하는 교육 방법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굳이 경쟁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가 알아서 공부하는 모습은 핀란드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우열 방식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의 본질적 목적에 충실한 교육 방법과 정책을 오랜 시간 동안 실천하고 있다. '싫어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기다림의 교육방법을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개별학습을 최우선시 하며 각 학교와 교사에게 권한을 주어 학습동기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2003년 PISA에서 측정한 학력에서 상위권 1할, 즉 4위까지의 모든 영역에서 두드러진 국가는 한국과 핀란드 뿐이다. 그런데도 두 나라의 교육은 매우 대조적이다. 한국 아이들은 정규 학교 수업 이외에도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한국 아이들의 방과 후의 공부 시간은 일본의 2배 이상이고 핀란드의 3배 가까이나 된다고 한다.

굳이 경쟁을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니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뜻이다. 사회가 자신을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안심과 인권을 소중히 하는 복지 사상이 사회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사회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 선생님들도 한 학교에 오래 머무르기 때문에 안정된 상태에서 그 지역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책임을 다한다고 한다. 이처럼 전 세계의 교육당국자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핀란드의 교육적 특징을 간추려보면,

첫째,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평등한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16세까지는 선별하지 않고 종합 교육이 실시되어 교육의 기본은 등수를 매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발달을 지원하는 데 있다는 점을 철저히 한다.

둘째, 학생들은 스스로 배우는 것을 교육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 중이라도 자유롭게 쉴 수 있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철저히 지키게 한다. 그룹 학습이나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소중히 하며 '사회 구성주의적 학습'의 교육학 이론을 충실히 따른다.

셋째, 학교 교육이 최대의 효과를 올릴 수 있도록 교사를 전문가로서 신뢰하고 교사가 일하기 쉬운 직장을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서 국가의 권한을 최소한으로 하고 학력 조사 등은 학생들과 교사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학교나 교사의 잘잘못을 공표하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교사를 신뢰하며 교사는 석사 학위가 필요하며 일단 현직에 들면 제도적인 개인별 교사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의 근무 조건이나 어떤 연수를 희망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더욱 흥미로운 것은 현직 교원을 비교하는 사회적인 사정이라든지 인사 고과 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교사의 초봉은 연봉 3천만 원 정도며 교사는 윗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조사를 당하는 일도 없고 정부 관료들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가르칠 자유가 보장된다. 그 대신 자유와 권한이 많은 만큼 무거운 책임을 진다.

교육 개혁 과정에 교사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교장은 교사의 의견을 잘 듣고 수렴해 가는 풍토이다. 특기할만한 점으로는 교사들은 같은 학교에서 거의 정년까지 근무한다. 따라서 아이들의 학력 형성이나 인격 형성에 있어서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신중하게 대처할 수 있다. 사는 곳 가까이에 학교가 있고 늘 한결 같은 선생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최종 목적은 학교 밖으로 나가서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학습자가 준비하는 것"을 학교의 핵심 역량으로 규정짓고 있는 핀란드의 교육 정책은 다양한 교육문제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추어 볼 수 있는 훌륭한 거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이 책을 단숨에 읽어냈다.

유럽연합 안에서도 경제 발전의 호조를 누리고 있는 핀란드의 저력은 다름 아닌 "학력"에 있었다. 과외나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하고 싶은 취미 활동을 즐기며 최상위 성적을 내는 핀란드 아이들은 핀란드의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육, 교육의 본질적인 의미에 충실한 교육 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떤 아이도 그가 지닌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철저한 교육 평등과 복지 정책은 사람을 중히 여기는 사회적 관심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것이다.

학력 평가 결과는 성적이 나쁜 학교를 찾아내서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잘 못하는 아이들을 끌어올리는 데 힘쓰고 잘하는 아이들은 그냥 놔둔다고 한다. 단 한 사람의 낙제생도 만들지 않는 학생들 중심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단계에서도 선별은 하지 않는 것이다. 16세까지는! 대학에 입학기 위한 필기시험이라 해도 지식의 양을 묻는 것이 아니라 책을 한 권 나누어 주고 그것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한 장의 종이에 기술하는 형식을 취한다.

넷째, 교육받을 권리를 복지 정책으로 보장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수업료는 무료이며 고등학교까지는 교재나 교구, 급식, 통학요금 등 여러 방면의 학습 환경이 무료이다. 또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의 하숙비에도 보조금이 나오며 학력 향상을 제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아이들이 만족하는 충실한 학교생활을 주요 교육과제로 삼는다.

<핀란드 교육의 성공>은 경쟁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학력을 자랑하는 핀란드 교육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전하는 책이다. 다양한 보고서와 현장 사진, 인터뷰 기사가 넘쳐나는 책이다. '자기 스스로를 위해 즐겁게 공부를 한다'는 핀란드 학생들에 비해 너무 일찍부터 너무 많이 공부로 내몰려 공부하는 즐거움보다 공부에 질린 우리 나라 아이들의 현실을 비추어 보며 참으로 많이 마음이 아팠다. 정적 공부를 많이 해야할 시기에 이르러서는 책을 멀리하며 수단으로 전락하고마는 우리 교육의 현실.

<핀란드 교육의 성공>을 읽으며 공부를 잘 하는 아이도 뒤처진 아이도 함께 상처를 받는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낼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함을 생각하며 가슴이 답답했다. 언제나 그 자리, 그 지역에 계신 고향 같은 선생님, 학생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학생 민주주의,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교육복지국가, 시험점수로 등수를 매기지 않으며 소중한 인격을 보장받는 인간적인 모습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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