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논을 보며 평등 세상을 꿈꾸다

2008.11.01 10:50:00

지난 10월 하순, 전교생이 가을 나들이를 갔습니다. 에너지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영광 원자력발전소를 견학하고 영광 가마미 해수욕장의 바닷가에서 놀이도 하였지요.

아이들과 함께 가을 소풍을 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벼논은 해님이 빗질하고 바람이 가위질을 했는지 단발머리 소녀처럼 이발한 벼들이 단정하게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삐죽이 나오지 않고 키를 맞추어 서서 평등 세상을 노래하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쩌다 삐죽이 얼굴을 내민 녀석은 농부의 손길에서 살아남은 피 뿐이었습니다. 해마다 보아왔던 벼논의 풍경이 새롭게 보여서 놀랐습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보다 새로운 시각을 갖는데 있다.' 고 한 프루스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추수를 끝내지 않은 벼논은 한결같이 같은 키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이발을 시켜 놓은 것처럼! 문득 세상의 아이들도 저렇게 공평하고 곱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모두 함께 성취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을 품은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아이도 가정환경이나 외모, 재능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저렇게 대우받으며 함께 기뻐하고 어울리며 사는 세상.  세상에서 숨쉬며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저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같은 키를 서서 눈맞춤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끈이 소풍길에서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리 속을 돌아다녔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초등학교 때부터 우수한 인재를 키우고 해외로 유학하는 학생들을 붙잡는다며 경쟁만이 살 길인 것처럼 국제중학교 설립 문제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양극화의 그늘에서 마음 아파하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에게 다시금 소외감을 안겨주는 정책으로 한숨을 짓게 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벼논의 풍경이 남다르게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날 핀란드나 싱가포르가 국제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교육의 힘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앞서가는 자보다 낙오되거나 뒤처진 학생을 함께 끌어올리는 정책으로, 교육을 통한 평등정책, 복지정책으로 국민들의 신뢰와 믿음을 얻었습니다. 소수 정예부대보다 전체를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된 것입니다.

영재 교육이나 우수아 중심 교육으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수직적인 교육 풍토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쟁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교육으로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문화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지 않는 교육 방법으로는 결코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다는 복지국가의 이념을 꿰뚫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주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그런대로 살만한 사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양극화로 뭔가 손해를 본 것 같아 억울해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잠재적 분노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주어진 가정 환경이나 신체 여건으로 오를 수 없는 나무 밑에 사는 사람에게 네 힘으로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강변하는 형국이니까요.

벼들은 모판에 심어지는 순간부터, 모내기를 할 때에도, 커 가면서도 벼 이삭을 내면서도 한결같이 홀로 앞서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벼들은 바람에 쓰러질 때에도 혼자 쓰러지게 놔 두지 않습니다. 무리를 지어 서로를 끌어 안고 버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연은 말없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사실을 벼논에서 배운 가을 소풍길이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모두 함께 성취하는 교실 풍토를 가꾸는 데 진력해야 한다고 풍요로운 벼논의 벼이삭은 내게 속삭이고 있었으니까요.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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