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화가 병들어 가고 있음을 마냥 보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인터넷 문화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청소년 문화는 더욱 인간 문화라기보다는 기계화 문화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학교에 등교하여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가 뛰노는 학생보다는 앉아서 핸드폰으로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학생이 더 많다는 것을 쉽게 눈여겨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을 듣는다거나 영화를 본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이전의 청소년들은 운동장이 그들의 놀이 무대였다. 그래서 공을 가지고 놀면서 친구간의 인간미 넘치는 정을 싹트게 했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말을 곱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굳이 단어에 강세를 두어 탁음으로 발음하는 이면에는 이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응어리를 토해내는 듯하다. 그런데도 정작 그들이 안고 있는 응어리를 살펴보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이 그렇게 표현하는 데 익숙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표현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전혀 없다. 꼬집어 물어 보면 집안의 내력이라든지 습관이라든지 친구에게 한 것이라든지 등등으로 순간순간 교사의 질문을 피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이들의 행동은 어떠한가? 이들이 행하는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은 더욱 가관이다. 교사가 회초리로 때렸다고 하여 거침없는 말의 표출은 물론 심지어는 교사에게 무례한 행동으로 반격을 가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이를 제어하려는 교사의 지도 행위는 매스컴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에는 교사만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것이 다반사다. 학교 정문에서 교사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오는 학생보다는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학생부에 지적을 당하는 학생은 그때그때뿐 자신의 행동을 바르게 하려는 의도를 거의 내비치지 않는다. 이러한 무례한 행동들이 교사들의 눈에는 교정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들을 바로잡으려는 의욕이 앞서는 교사들은 학생에게 회초리를 가하는 것을 가끔 눈여겨 본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교사들에게 마이너스를 초래하여 심지어는 인터넷에 오르내리면서 교사의 체면을 손상시켰다고 하여 직위가 해제당하거나 교사에게 중징계를 받는다는 경우를 흔히 듣게 된다. 현장을 지켜가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심하게 구타를 가했다고 하여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를 볼 때마다 참으로 아리송할 따름이다. 진정 교사가 의도적으로 학생을 때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 최근 학교 현장에서 과연 학생들에게 매를 가하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 또 매를 가하지 않고 학생에게 온갖 열과 성을 가해 상담으로 정성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는 얼마나 될까? 학교 현장의 학생들의 행위는 그 답을 정확하게 말해 준다.
청소년 문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싱싱한 모습에 넘치는 활력에 순수한 그대로의 모습 때문에 기성세대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병든 화초처럼 피어있어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에 그 누가 찬사를 가하겠는가? 아름답게 피어나야 할 화초를 병들게 기른 것도 화초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청소년 문화도 병들고 시들어 가게 만든 원인을 그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청소년에 대한 지나친 기성세대들의 폄하에서 온 결과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