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그 때 이야기

2008.12.06 09:56:00

"20년전(1988.12/교직경력 11년)과 10년전(1998.12/교직경력 21년) 이 맘 때 나의 월급 수령액은?"
"653,220원과 2,230,880원"

어떻게 알았을까? 창고에서 물건을 찾다가 보관해 둔 통장을 보니 답이 나온다.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그 때 저 돈 가지고 어떻게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보면 부족한 줄도 모르고 꿈에 부풀어 알뜰살뜰이 가계를 운영하지 않았나 한다.

며칠 전 회식에서 우연히 월급 이야기가 나왔다. 월급이 지금처럼 통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찰로 받았을 때의 추억과 경험담을 이야기 한다. 귀가 중 그 귀중한 돈,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도시락 속에다 집어넣어 간 여선생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버스에 소매치기가 많았었나 보다.

그 당시 주로 기혼 남 선생님들의 월급봉투 새로 쓰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서무실(지금의 행정실)에서 빈 봉투를 얻어 명세표를 새로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액만큼을 용돈 내지는 비상금으로 챙기는 것이다. 글씨체 들통 날까봐 주위의 선생님들에게 써 달라고 부탁하는 분도 많았다.

또 월급날은 외상값 갚는 날이었다. 친목회 총무는 그 동안 회식 때 먹은 장부를 들고 돈 거두러 다니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어느 학교는 회식은 안 했어도 음식점 문고리만 잡아도 분배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술집 주인이 직장까지 와서 받아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그 만치 현금이 귀했고 또 선생님들은 술을 많이 들었다는 증거다. 막걸리 한 잔으로 목에 낀 백묵가루를 씻어내려야 한다고 선배들은 말했다. 그 이면에는 외상이 통용될 만큼 선생님들에 대한 신용이 높았었다. 또 술 한 잔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교직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 동료애를 쌓았던 것이 아닐까?

통장을 살펴보니 1984년에 월급 자동이체 통장을 처음 만들었다. 이 때부터 가장의 권위가 서서히 무너져내린 것은 아닐까? 이 때부터 돈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하기 시작했다면 너무 심한 말일까? 선배들은 말한다. 과거엔 월급을 내놓으면서 아내에게 큰소리도 치고 고맙다는 말도 들었는데 이제는 아내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 용돈을 타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고.

그래서 처음엔 행정실에 부탁해 월급의 일부를 현찰로 바꾸어 가져가는 분들도 많이 있었다. 월급 내놓는, 자랑스런 가장의 권위를 살리기 위한 궁여지책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경제 실권은 아내가 쥐고 있는 것이다. 곳간 열쇠는 과거나 현재나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교직경력이 32년차인데 그 동안 만들었던 월급통장이 무려 25개가 넘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폐기된 통장은 쓸모가 없어 버리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금전출납부요 삶의 질곡이 담겨 있기에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오늘 인터넷 통장 조회를 하니 잔액이 겨우 몇 십만원이다. 다른 통장으로 이체를 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인가? 오늘따라 웬지 기력이 없다.

선배들은 말한다. 지갑이 두둑할 때 자신감이 생기고 어깨가 펴지고 상대방을 당당하게 대할 수 있다고. 현찰이 든 두둑한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어 놓을 때 가장으로서 뿌뜻함을 느꼈다고.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이라고. 인생의 멋이라고. 그리고 그 시절이 좋았다고.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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