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들어 여러 번째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이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다. 시간보다는 단연 축의금이다. 월급쟁이 처지에 더군다나 용돈을 타 쓰는 주제에 축의금으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용돈으로 충당해야 하니 기둥뿌리가 휜다는 소리가 맞다. 그렇다고 세상을 살아오면서 맺은 인연으로 연락을 한 것인데 나 몰라라 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L교장에게서 청첩장이 왔다. 딸을 결혼시킨다는 것이다. L교장은 먼저 근무했던 학교의 교감이었다. 나이는 나하고 동갑이지만 나는 평교사였고 그 양반은 교장임용을 눈앞에 둔 교감으로 2년을 같이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다.
직장의 동료라는 것이 대개의 경우, 직장을 옮기게 되면 동료관계가 해소되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나중에 사적으로 만나거나 친분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자녀 결혼 시엔 꼭 연락을 하게 되고 또 옛 인연을 생각하여 참석하여 얼굴이라도 비치는 것이 도리로써 관례처럼 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같이 근무했던 모든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다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가깝게 지냈거나 한 부서에 있었거나 몇 가지 요인으로 청첩장이 발송되고 또 참석 여부도 결정이 된다. 내 경우 사립학교에 오래 근무하다가 사학재단이 공립으로 편입되는 바람에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인연으로 그 사립학교 시절 동료라면 꼭 참석한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으면 우편환으로 축의금이라도 보내고 있다.
공립학교 동료들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청첩장이 오는 경우도 예식에 참석하는 경우도 비교적 뜸한 편이다. 계속 순환근무를 하게 되어 오래 같이 근무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같이 근무한 기간이 그런 면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오늘은 꼭 참석하고 싶었다. 그것은 L교장의 인품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오랜 교직생활 동안에 몇 안 되는 기억나는 교육자 중의 한 분이다. 그 분이 가톨릭 신자인 줄은 이번 청첩장을 보고 처음 알았다. 같이 근무할 당시엔 전혀 몰랐다. 결혼식 장소도 성당이었다. 그래서 더 참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오랜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다. 혼인미사로 내일 주일미사를 대체하려는 계산도 조금 있었는지 모른다. 해당 성당으로 달려가 골목길에 주차하고 식장으로 갔다.
선생님들 자녀 결혼식은 대개 큰 성황을 이루어서 그 상황을 예상하고 갔는데 의외로 조촐했다. 축의금을 내고 잠시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내가 아는 분은 교장 두 분과 교사 몇 명이 고작이었다. 하객들은 성당 입구에서 축의금을 전달하고는 곧장 피로연장으로 가고 실제로 예식에 참여하는 하객은 신랑 신부 친구들이거나 친인척뿐인 것 같았다. 예식시간이 다가와 성당으로 들어갔다. 예식은 가톨릭 식으로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성가를 부르고 결혼에 관련된 성경이 봉독되고 주례신부의 주례사가 있었다. 주례신부는 신랑 신부가 오래 살면 서로 닮아간다는데 이 신랑 신부는 처음부터 너무 닮았다며 너스레를 떨어 하객들을 웃기기도 했다.
나는 성체성사 후 조금 일찍 나와 피로연장으로 가 둘러보았으나 아는 교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다들 미리 와서 식사만 하고 떠난 후였다. 식사를 마치고 혼자 피로연장을 나오면서 요새 결혼식 풍경을 생각해보았다. 나의 경우라면 어떻게 할까? 많은 분에게 알려야지 하는 생각과 그게 다 욕심이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종종 딸의 결혼식을 미리 생각해볼 때가 있다. 불안 섞인 상념이 생긴다. 하객이 적어 식장이 너무 초라하지나 않을까? 이런 것을 아마 예기불안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냈던 축의금을 그럼 다 포기하란 말인가? 참 옹졸한 생각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많은 하객들이 몰려들어야 아이들 장래가 좋을 텐데. 참 근거 없는 생각이 충동질하기도 한다.
축의금이 꼭 품앗이가 되어야 하는가? 아무래도 욕심일 것 같다. 상부상조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상황에 따라서 이쪽에 축의금을 내고 또 저쪽에서 받기도 하는 것이지 일일이 기억하여 연락을 취하려 한다면 얼마나 번거로울까? 낸 축의금은 일단 잊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가까운 친인척만으로도 식장은 북적거릴 것이다. 청첩장을 돌리는 것이 폐를 끼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욕심을 털어내니 갑자기 홀가분해지는 느낌이다. 예식장이 북적거리고 축의금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욕심의 발로다.
현명한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하객이 북적거리고 축의금이 많이 들어와야 훌륭한 결혼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수에 맞는 결혼식이 더욱 성스러울 것 같다. 축의금이 들어오면 얼마나 더 들어올 것인가? 축의금으로 혼인을 치룰 작정이었나? 그것으로 전셋집이라도 마련할 생각이었던가? 북적북적하여 사람에 치일 것 같은 혼잡한 결혼식보다는 신혼부부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분들 모시고 조촐하게 치르는 결혼식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L교장선생님은 부부교육자다. 두 분이 청첩장을 많이 돌렸다면 아마 더 많은 하객들로 식장은 대 혼잡을 이룰 수도 있는데 의외로 소박한 분위기였다. 혹시 딸의 결혼식을 조용하게 계획한 것이 아니었을까. 교장선생님 따님 결혼식을 벤치마킹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며 욕심 내지 말고 조용하게 결혼식을 계획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