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은 멀어져만 가는데

2009.04.21 10:44:00

우문(愚問) 몇 가지. 첫 문항, 다음 중 지위가 높은 것은? 교장(校長)과 교감(校監), 교육장(敎育長)과 교육감(敎育監), 장학사와 학무과장. 둘째 문항, 초·중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 중 고등학교 교육에 관한 사항을 다루고 있는 법은? 정답은 교장, 교육감, 학무과장, 초·중등교육법이다. 일선에 몸담고 있는 교육자들은 이 질문의 수준이 우습지만 아마도 일반 국민들은 교장이 교감보다 높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일반 국민들은 자기 자녀의 교육에는 관심이 높지만 교육청의 직제라든가 교육에 관한 법률에는 대체로 관심이 없는 것이 정상이다. 지역교육청과 시·도교육청의 수장이 각각 교육장과 교육감인데 교육청장이라고 일컫는 사람도 보았다.

대한민국에서 학교 수, 학급 수, 학생 수, 교원 수가 가장 많고 교육예산도 최대인 경기도. 그래서 경기교육의 수장을 교육대통령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기도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투표율은 12.3%로 사상 최저의 초라한 성적이다. 왜 이렇게 나왔을까? 국민들의 관심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까지도 필자에게 묻는다. “교육감을 뽑는데 왜 내가 투표를 해야만 하느냐?”고.

투표율 제고를 위해 선관위에서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교육감 선거는 후보자와 관련자 몇 사람만의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국민들을 탓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입법기관인 국회, 정치인, 언론기관, 선관위 등 공동 책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간접선거에서 직접선거로 바뀐 이유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것이 미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제 국민들은 내년 6월이면 무려 8명을 동시에 뽑아야 한다. 시·도지사, 도의원, 도의회 정당별 비례대표, 시장, 시의원, 시의회 정당별 비례대표, 교육감, 교육위원 선거가 바로 그것. 이 중 교육감과 교육위원은 정당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기호 순서도 정당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가 된다.

“헌법재판소는 최후의 헌법수호자로서의 사명감을 망각하고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무시한 처사를 국민 앞에 사죄하라!” 4월 2일, 전국 시·도 교육위원 일동 명의로 내세운 요구사항이다. 사실 내용의 전후관계를 모르고 이것만 보면 헌재가 무슨 큰 죄(?)를 저지른 것 같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3월 26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지방교육자치법’ 헌법 소원 각하 결정을 내렸다. 2010년부터 각 시·도교육위가 시·도의회의 상임위로 편입돼 교육자치제도가 훼손되고, 전문적·자주적·중립적 교육 권리가 침해된다는 헌법소원 심판청구에 대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강호봉 서울시교육위원, 전국 시·도 교육위원협의회 등이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제4조(교육위원회의 설치), 제5조(교육위원회의 구성 등), 제13조(의안의 발의 및 제출) 등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청구인들이 심판대상조항으로 기본권을 현재 직접 침해당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재판부는 학생·학부모·교사의 청구에 대해 “교육위원회가 직접적인 교육행위의 주체가 아니며, 교육의원에 대한 구체적 법령이 제정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전국시·도교육위원협의회 청구는 구성원인 교육위원들을 대신해 청구할 수 없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전국시·도교육위원협의회의 처지가 딱하기만 하다.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의 소원 제출은 부적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헌법소원을 제출한 사람들은 법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셈이다.

이번 판결은 2006년 12월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개정으로 시·도교육위가 독립기구에서 시·도의회의 하급기관으로 전환돼 교육위원 및 예정자의 평등권, 공무담임권과 학생·학부모·교사의 교육권이 침해받는다는 이유로 2007년 3월 20일 청구서가 제출된 지 2년 만에 나온 것이다. 헌재는 무슨 이유로 헌법소원 청구서를 질질 끌었는지 혹자의 ‘직무유기’라는 쓴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전국시·도교육위원협의회는 헌재의 이번 판결에 대해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2010년 7월부터 현재의 15개 시·도교육위원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현재의 교육위원 대신 교육의원이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전국의 교육의원 정수도 139명에서 77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국민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교육위원회가 시·도의회 속에 편입이 되어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들든, 투표의 등가성이 무시되든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교육자치가 훼손이 되든 말든 ‘먼 나라 이야기’다.

국민들은 현재의 교육위원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법률상으로는 교육ㆍ학예에 관한 중요사항의 심의ㆍ의결하고 교육감과 보조기관, 하부 교육행정기관, 기타 교육기관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와 조사를 할 수 있는 지위이다. 그러나 교육계에서조차 교육위원들이 교육발전에 이바지했는냐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요즘 필자의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경기도의 투표율이 최저라는데 대해 자존심이 상했다. 전국시·도교육위원협의회의 헌법소원이 헌법 제31조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따져보기도 전에 각하된 사실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교육위원들이 법률적 지식이 부족하다면 법률 전문가의 힘을 빌어 재판관 전원 일치의 각하라는 결과만은 초래하지 말았어야 했다. 헌법 소원 정신의 본질에 접근하지도 못한 것이다. 헌재의 냉엄한 판결에 일견 수긍이 가지만 이것을 왜 2년간 질질 끌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헌재의 공식적인 답변을 듣고 싶다.

지방교육자치는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 없다. 헌법에서 말하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계는 국회에서 만든 지방교육자치법의 맹점을 합당한 근거를 대면서 국민과 언론에게 알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국회의원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 작업,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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