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나이 많은 교사

2009.04.26 11:11:00

발령을 받고 새 학교로 전근하고 보니 공교롭게도 교직원 중에 내가 제일 연장자가 되었다. 그동안 교장 선생님은 항상 나보다 연상이었는데 그 상황도 이제 바뀌었다. 교직사회에 흔히 있는 일이니 특별할 것은 없다. 나이를 먹는 걸 인력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나보다 나이가 적은 분이 대통령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아직까지 나보다 나이가 적은 분이 대통령을 한 사례는 아직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만약 여당 후보가 당선 되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교직에 있는 동안엔 나보다 어린 분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나는 은근히 바란다. 까닭이야 나도 모른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런데 막상 직장의 상사보다 나이가 많은 상황이 되고 보니 한편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든 나이 값을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되지만 남녀노소가 다 어울려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직장이라면 인화와 협력은 필수적인 덕목이 될 것이다. 내 직무를 수행한다지만 상호 협력하여 수행해야 하는 것이 직장 업무다. 그럴 때 나이가 걸림돌이 된다면 그건 안 될 일 아닌가.

나이 육십이면 젊은 사람 취급받는 세태이니 노 교사란 말도 이젠 구태의연한 용어인지 모른다. 누가 나보고 ‘박봉에 시달리며 평생 후세교육에 이바지’ 운운하며 노 교사라 칭한다면 내 낯빛은 금세 찌푸려질 것이다. 나는 아직 늙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뿐더러 나를 희생하며 교단에 서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근무를 한 것이지 나를 희생해가며 오로지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군사부일체를 들먹이며 실추된 교사의 권위를 안타까워하지만 그것은 사회의 변천에 의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 크게 잘못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일면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교사가 중요한 직무를 담당하는 건 맞지만 다른 분야의 종사자들에 비해 특별하게 대접을 받는다든지 남다른 위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쉽게 동조할 수 없다. 교사도 역시 사회라고 하는 커다란 유기체의 한 부분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은 모두 자기의 직분이 소중하다. 군인은 군인대로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소중하고 예술가는 예술가대로 또 상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나름대로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교사만이 소중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교사에겐 업무의 특성상 반드시 요구되는 사항이 있을 것이다. 사랑으로 제자를 교육해야 한다든지 자라나는 세대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행동의 특성을 겸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정년도 얼마 안 남고 나이가 많은 상황이 되고 보니 근무 자세를 새삼 가다듬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특별할 것은 없고 하루아침에 취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랜 교직경험으로 얻은 지혜를 발휘하여 모범이 되도록 해야 하고 건강을 잘 보살펴 젊은 교사 못지않은 열성으로 후세 교육에 전념하는 일 아니겠는가.

교장선생님도 종종 나이가 더 많은 교사와 함께 근무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교직생활을 오래 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불편이 혹 있더라도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아들뻘 되는 직장 상사와 일을 한다 해도 각자 맡은 고유 업무가 있으니 하등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고 본다. 다만 직장이란 곳이 오직 공적인 업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업무 외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니 그런 면을 염두에 두긴 해야 할 것이다.

어린 임금을 모시는 늙은 신하도 있게 마련이고 대통령을 보필하는 연상의 비서진도 있지 않겠는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나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를 떠나 윗사람의 위치에서 직무에 임하고 아랫사람의 입장에서 맡은 업무에 임하면 될 것이다. 명명백백하게 모든 것이 투명해지는 사회 아닌가. 나이가 적어도 상사요, 나이가 많아도 아랫사람이다. 공적인 원칙과 사적인 도리를 존중하면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할 때 능률은 오르고 분위기는 즐거울 것이다.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려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직장이다. 즐거운 학교가 교사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 내고 학생의 잠재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발현시킬 것이다. 상호협력과 화합으로 활기찬 분위기에서 학생들 꿈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란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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