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읽은 짧은 이야기 한토막이다.
어떤 나라의 현자(賢者)가 누더기를 입고 읍내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이를 발견하고 은근히 나무랐다. “옷이 그게 뭔가. 자네는 창피하지도 않나?” 그러자 현자가 말했다. “무슨 소리, 여기는 나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괜찮다네.” 다음날이었다. 현자는 자기 마을에서 역시 누더기를 입고 활보하고 있었다. 이를 본 친구가 참지 못하고 또 한 마디 해댔다. “뭐야, 자네 마을에서도 그런 옷차림으로 다니나?” 현자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긴 누구든 나를 다 아니까 괜찮다네.”
얼마 전에는 모 장관이 외국 순방 중에 대통령으로부터 “왜 농림부 장관이 외교부 장관처럼 양복을 입고 넥타이 매고 다니느냐”는 한 마디 꾸중을 들었다. 가관인 것은 장관이란 사람이 이 소리를 듣고 나서 작업복을 입고 일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조롱거리가 되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 일이다. 애초에 그런 말을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우스갯소리로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복, 국방부 장관은 군복, 노동부 장관은 노동자 옷차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의사 가운, 법무부 장관은 법복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할 것 같다는 등 풍자와 해학이 인터넷 공간에 넘쳐났다고 한다.
옷차림에 대한 촌평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 같지 않다. 얼마 전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 공무원들에게 튀는 헤어스타일과 지나치게 화려한 색깔의 옷을 금지하는 ‘옷차림 지침’이 내려진 뒤 한 서방 언론이 덧붙인 촌평이 있었다. “정저우시는 패션 스타일보다 농업의 미래상과 철도역으로 더 유명하다.”
이렇게 옷차림에 대해 이러저런 얘기를 길게 든 이유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여름철 간소화 옷차림 공문에 대한 것 때문이다. 이것은 매년 이맘때에 행정안전부의 복무담당 부서에서 정부 모든 부서에 공문을 보내 공무원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옷차림 지침이다.
대충 내용을 보면, 목적으로는 간편한 옷차림을 통해 근무능률을 향상시키고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진작시킨다고 한다. 여기에다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 냉방에너지 소비량을 절감한다는 거창한 이유도 있다. 이러기 위해서 노타이나 반팔 셔츠를 입되 밝은 색깔 옷을 입고, 의전에 필요한 사람들은 정장을 입으라고 한다. 다만 슬리퍼를 신거나 노출이 심한 옷은 지양하라고 되어 있다.
우선 이러한 옷차림에 대해 굳이 생활이나 행동의 방향 준칙 따위인 지침으로까지 명시해서 공문으로 내려 보내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다. 무슨 먹고살기 힘들었던 50년대나 후진국도 아니고 굳이 옷차림 하나하나 지적해 가며 입어라 마라 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으로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불편과 불필요한 절차로 인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언했던 사람이다. 그런 일로 인해 어느 공단의 전봇대도 하루아침에 뽑혀 나가지 않았던가. 이렇게 옷차림마저 규제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과거 오랜 군사독재 문화로 인한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것을 강조하는 악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게 보여야 하고 줄에서 조금만 벗어날 경우 그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은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유니폼이 필요한 특수한 직렬, 예를 들면 현업부서인 우체국, 경찰, 소방서 등의 직원들이야 옷차림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지만 기타 공무원들은 상식선에서 판단하여 옷을 입으면 될 일이다.
저 깊은 산골짜기 계곡에 있는 돌들은 자칫 무질서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놓여있는 것 자체가 자연의 아름다움이요, 예술이다. 그렇게 놔두어도 시냇물은 잘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