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 훈화 유감

2009.06.30 08:41:00

요즘 세상 사람들의 대화와 소통 방법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필자의 경우 이메일을 통해 받는 편지만도 하루 10여 통에 이르고 인터넷 카페도 10여개 가입해 카페 회원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다.

카페 회원들 몇 몇은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아주 오래된 지인처럼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한다. 어떤 일상사에 대한 글 한 편을 올리면 회원들은 선플을 달고 공감을 표시하고 때론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성별, 나이, 직업과 지역을 초월한다.

필자는 얼마 전 삼호아트센터 개관 2주년을 맞아 축하 영상 메시지를 카페에 올렸다. 칭찬과 격려 댓글이 몇 개 달라붙는다. 아마도 그들은 필자가 아무런 준비 없이 즉석에서 동영상을 만들고 탑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봉사활동 중 우연한 기회에 관람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알게 된 삼호아트센터, 그 짧은 기간에 정기공연 46회, 무료 대관공연 15회, 찾아가는 음악회 80회 등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우리 학교에도 성악가 8명이 찾아와 멋진 공연을 펼쳤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예술을 통해 한다는 것 자체가 필자의 관심과 흥미를 끌었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어 아내의 도움을 받아 동영상을 만들어 본 것이다. 동영상은 밋밋하다. 필자가 출연하여 축하의 말을 1분 8초 동안 한 것이 전부이다. 다만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자연스럽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표정이 굳어 있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녹화 전 멘트를 미리 준비하여 혼자서 연습을 몇 차례 해보았다. 딱 다섯 문장이다. “수원시민을 음악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삶의 질은 높여준 삼호아트센터에 감사드리며 개관 2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다양한 음악장르와 수준 높은 공연으로 수원시민에게 계속 감동을 선사해 주기 바랍니다. 또한 관심과 열의가 높은 팬을 모니터로 활용해 운영 개선방안을 찾았으면 합니다.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관객 친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관객과 함께 하는 공연을 만든다면 그 감동과 추억은 오래 갈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삼호아트센터 개관 2주년을 축하합니다”

이에 대한 댓글과 필자의 답글을 소개한다. “교장선생님 멋지십니다. 아침 조회시간마다 선생님은 전교생 지루하지 않는 명설교 아니 명강연을 하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서호중학교 학생들 복 받은 거예요” → “요즘엔 운동장 조회를 하지 않습니다. 기껏 교장과 전교생이 만나는 것은 일 년에 몇 차례에 불과합니다. 학교장 훈화는 옛이야기입니다”

“교장선생님=지루한 조회시간, 고지식함, 어려운 분? 이런 개념을 완전히 바꿔버리신 분. 저도 서호중학교 다니고 싶어지네요” → “그러고 보니 교장들이 반성할 점이 많네요. 지루한 훈화, 학생들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지요”

그렇다. 필자의 초등학교 6년과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운동장 조회에서 교장 선생님 말씀, 무엇이 남아 있을까? 세월이 많이 지나기도 했지만 별로 없다. 기껏해야 중학교 시절 교장선생님이 즐겨 쓰시던 ‘제군들’이란 단어 하나 정도다.

얼마 전 교장 연찬회에서 경기대학교 차인태 교수의 특강을 들었다. 그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더듬는다. 말씀 잘 하는 분,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분, ‘마지막으로’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인다면’으로 길게 말씀하시는 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월요일 애국조회, 시작에서 끝나기까지 무려 한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어린 학생들에게 ‘이건 애국이 아니다’를 각인시켰다고 한다.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말하기 공부가 필요하다. 말을 잘 하려면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말할 중요한 내용을 간단히 메모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다. 필자의 짧은 축하 영상 메시지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뜸을 들여 나온 결과다.

말하기 전에 미리 구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짧은 말하기라도 처음, 중간, 끝을 생각해야 한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하면 핵심이 없는 말하기가 된다.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짜증을 내게 된다. 듣는이에게서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

차 교수는 말한다. 훈화는 가능하면 짧게 하라고. 꼭 하고 싶은 말만 하라고. 그래야 학생들에게 강하게 강조된다고. 이것은 비단 학교장 훈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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