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다’와 ‘앉히다’

2009.07.03 18:15:00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자와 아버지가 마을의 다른 집을 얻어 살자 엄마는 팔을 걷어붙이고 그 집으로 달려가 여자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아궁이에 걸린 솥을 떼어내 도랑물에 떠내려보내버렸다.(p. 105.)

여기에 나오는 ‘안치다’라는 단어에 대해서 알아보자.
‘안치다’는 동사로
밥, 떡, 구이, 찌개 따위를 만들기 위하여 그 재료를 솥이나 냄비 따위에 넣고 불 위에 올리다.
- 시루에 떡을 안치다.
- 솥에 고무마를 안쳤다.
- 솥에 쌀을 안치러 부엌으로 갔다.
- 천일네도 소매를 걷고 부엌으로 들어서며 작은 솥에 물을 붓고 가셔 낸 뒤 닭을 안치고 불을 지핀다.(박경리, ‘토지’)

‘안치다’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쓴다. 매일 끼니때마다 ‘밥을 안쳐야’하고, 특별한 먹을거리를 마련할 때도 ‘안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안치다’를 써야 할 자리에 ‘앉히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있다.

○ 친구들은 모두 배가 고파 난리들이었다. 서둘러 전기밥솥에 쌀을 앉히고 코드를 꼽았다. 친구가 일본에서 사다 준, 당시로서는 귀하기 그지없는 도시바 전기밥솥이었다.(한국일보, 2003. 12. 10.)
○ 결국엔 시루 아래로는 쌀가루를 얇게 앉히고 위로는 두껍게 앉히는 식으로 두 내외가 타협을 하는 때도 있었다.(오마이뉴스, 2005. 3. 9.)
○ 보리밥은 보리쌀을 앉히고 뜸을 들인 다음 강원도 대표 음식 감자를 한 알씩 넣는다.(서울신문, 2005. 6. 16)

이 밖에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을 보면 ‘매일 새벽 5시면 콩을 갈아 두부를 앉히는데 7시쯤부터 순두부를 떠내기 시작해 순두부백반과 함께 두부찌개를 앉히고 아침 식사 손님을 맞이한다./텐트를 치고 밥과 찌개를 앉히고 나자 이제는 안도감에 술잔을 돌린다./김치찌개를 앉히고, 단호박과 가지를 전자레인지에서 쪄냈어요./시어머니가 밥을 앉히고 며느리에게 불을 때라고 일렀다.’라며 쓰고 있다.



이는 모두 ‘안치다’를 써야 할 자리에 엉뚱하게 ‘앉히다’를 쓴 경우다. 더욱 위 오류는 언론 매체 것이어서 안타깝다. 물론 위 글은 언론 매체에 외부 기고자가 발표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열을 통해서 바르게 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은 언론사의 책임이다.
‘앉히다’는
‘앉다’의 사동사로
- 아이를 무릎에 앉힌 여자
- 잠자리를 손가락 끝에 앉히다.
- 안채를 동남쪽에 먼저 앉히고 사랑채와 행랑채는 동향 쪽에 앉혔다.
- 사장이 자기 아들을 부장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앉히다’는 타동사로
1. 무엇을 올려놓거나 설치하다.
- 사장은 새로운 기계를 공장에 앉혔다.
2. 문서에 어떤 줄거리를 따로 적어 놓다.
- 그는 책을 읽다가 중요한 것을 여백에 앉히는 습관이 있다.
- 그는 따로 앉힌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다.
3. (…에게 …을)버릇을 가르치다.
- 자식들에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앉히다.
-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어릴 때부터 인사하는 버릇을 앉혀 주셨다.

‘안치다’가 ‘앉히다’가 발음이 같지만, 혼동할 문제는 아니다. 우선 ‘안치다’는 먹을거리를 익히기 위해서 솥이나 냄비에 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앉히다’는 여러 상황에서 쓰이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크게 혼동할 일이 없을 듯하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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