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러했듯 답사 날이 일요일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 장소와 시간을 확인하다 이번 답사 날짜가 토요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올해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은 아내가 부담 없이 따라나서는 날이 토요일이다. 부랴부랴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표에게 전화해 아내와 같이 참석하기로 했다.
양재천과 몽촌토성으로 답사를 떠나는 7월 11일 아침에도 잘못 꿴 단추마냥 일이 꼬였다. 아내는 휴일이라고 모처럼의 자유를 누렸고 나는 늦잠의 유혹에 빠졌다. 아뿔싸,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때부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허둥대며 세수하고, 옷 입고, 카메라를 챙겼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급히 차를 몰았건만 4분 정도 늦게 청주시청에 도착했다. 대부분 안면이 있는 무심천 모니터링 시민단체 회원들이라 늦게 왔어도 차에 오르니 반갑게 맞아준다.
촌 양반 한양 구경 가던 세월도 아닌데 7시 15분경 차가 서울을 향해 출발하자 가슴이 설렌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 다녀온 게 반년 전이다. 고속도로 입장휴게소에서 빈속을 채우자 식곤증이 자꾸 눈꺼풀을 덮는다.
단잠에서 깨어나니 서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찾아간 곳은 영동2교 부근이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준 양재천 지킴이 윤덕수님이 양재천의 역사와 수질정화시설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호우예보 때문에 시설가동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강남구청 홈페이지(http://ypark.gangnam.go.kr)에 양재천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하천연장 15.6km에 달하는 양재천은 관악산, 청계산에서 발원하여 과천 구간을 거쳐 서울 강남을 흐르는 한강 지류 중 하나입니다. 본래 사행하는 하천이었던 것이 1970년대 개포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직강화되었고. 양재천의 옛 이름은 공수천이었으며 양재천 합류부는 사행하도에 여울이 형성되어 백로가 빈번히 날아들었기에 이를 학여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윤덕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알아본 후 직접 하천을 걸으며 전국 유명하천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양재천을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양재천에 내려선 순간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양재천은 천(川)이라기보다는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같은 평수더라도 천이 바라보이는 아파트는 1~2억씩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이야기가 실감났다.
양재천 바로 옆에 있는 초고층 건물이 삼성타워팰리스다. 타워팰리스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73층(264m)의 건축물이다. 삼성에서 용역 받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호우로 발생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인공구조물도 자연과 어우러지면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만들 수 있다. 양재천과 타워팰리스가 서로 균형을 맞추며 하나되는 모습도 보고, 참나리와 타워팰리스의 멋들어진 모습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양재천은 분명 청주의 무심천에 비하면 좁은 하천이다. 물이 흘러가는 환경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다르다. 그런데도 배워가야 할 것이 많았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 자갈이 들어 있는 땅 속을 돌아 나오며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는 수질정화시설, 자전거 통행로 위쪽에 나무숲으로 조성한 산책로, 물가에서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목책탐방로, 자연스럽게 놓여 더 아름다운 무지개형 돌다리, 교각 아래의 빈 공간을 여러 가지 쉼터로 이용하고 있는 영동3교, 여름철 꼬마들이 제일 즐거워할 물놀이장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진짜 부러운 게 있었다. 바로 양재천에서 만난 '자연학습장'이다. 못자리체험에서 모내기행사, 친환경 우렁이농법, 허수아비체험, 벼베기체험, 얼음썰매장까지 사시사철 사람들을 불러 모을 추억과 낭만의 장소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대부분 농촌이 고향이었다. 농민의 피가 흘러서일까?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의 아이들도 농사체험 무척 즐거워한다.
한창 자라고 있는 벼들이 양재천을 녹색세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친환경'이나 '우렁이 농법'도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단어가 아니다. 타워 팰리스가 논두렁에 세워진 솟대와 우거진 숲을 내려다보고 있는 풍경도 볼거리다.
박과 수세미 넝쿨로 만든 터널을 만난다. 짧은 거리지만 식물로 만든 터널이 이곳을 찾은 아이들을 마냥 즐겁게 만든다. 큰돈 들이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을 열고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시민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성만 있으면 된다.
양재천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하천은 인위적으로 생태 습지를 걷어내며 직강 하천을 만들어 유속이 빠르다. 그런데 양재천에서는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양재천에 나무를 심고 녹색 숲을 만들어 공원화하는 것도 유속이 느리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심천 모니터링 단장인 연규방 교수와 하천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도 있었다. 연 교수는 하천은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가는 생태하천, 그곳에서 모든 생물이 같이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덕수님에게 고맙다는 박수를 힘차게 보낸 후 식사장소까지는 자율적으로 이동했다.
나무가 울창한 산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앞에서 느릿느릿 걸어가던 두꺼비가 인기척에 놀라 나무 등걸에 몸을 숨긴다. 왜 그뿐인가?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들도 산 아래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
영동3교의 교각 위에서 나무가 울창한 양재천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제방 길을 걸어 적십자혈액원을 지나자 갑자기 빈민촌이 나타난다. 양재천 둔치에서 '2009 여름빈활 학우동지 여러분 환영합니다'라고 써 있는 플래카드가 계단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최고 부자동네 강남에 웬 '빈활'인가 의아해 했는데 이곳이 그 현장이었다.
눈길을 끄는 망루가 경찰진압과정에서 인명피해가 컸던 용산참사 현장을 빼닮아 걱정이 앞섰다. 부자건 가난하건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개발과 보존도 병행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이익 챙기기보다 힘없는 소수를 먼저 보호하는 것이 순리다. 슬기롭게 풀어나가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점심을 먹고 몽촌토성이 있는 올림픽공원으로 갔다. 홈페이지(http://www.sosfo.or.kr/olpark)에 소개되어 있듯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꿈꾸는 올림픽공원은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문화, 생활, 환경, 역사를 체험하는 장소라 지방 사람들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어도 나무랄 사람 없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충북참여연대 강태재 대표로부터 우리나라의 토성, 석성, 읍성과 우리 고장에 있는 정북동토성과 청주읍성에 대한 역사를 배웠다. 주류 역사학계에 도전장을 던진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주장을 읽어보면 역사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려줬다.
공원풍경과 조형물을 카메라에 담고 몽촌토성으로 갔다. 네이버 백과사전과 올림픽공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몽촌토성(사적 제297호)을 요약하면 한성백제시대의 토성으로 전하여 왔을 뿐 정확한 내용을 모르다가 주변 일대가 88서울올림픽 체육시설 건립지로서 확정됨에 따라 발굴조사를 및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백제 초기인 3세기 초에 축조한 토성으로 북쪽방향으로부터의 침공에 대비한 방어용 성의 성격을 많이 띠고 둘레가 약 2.7km, 높이가 6~7m된다. 500여 점의 유물과 진흙을 차례로 쌓아 만든 판축, 움집, 지하저장혈 흔적도 발견되었다.
잔디가 녹색세상을 만들어 토성의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올림픽공원의 풍경이 아름답다. 움집터를 구경하고 나오니 시간이 촉박하다. 몽촌역사관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청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