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추풍령이 목적지였다. 화령장에서 만난 장꾼 할머니가 추풍령의 5일장까지 찾아간다는 말을 들은 터라 청주삼백리 회원들은 추풍령으로 가며 이곳의 지형과 거리를 살펴보기로 했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에서 화동, 모서, 모동을 지나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까지 가보니 의아심이 풀린다. 무척 먼 거리로 알고 있었는데 불과 32㎞에 불과하고, 고갯길이 한곳도 없이 편평한 평지만 이어진다. 또, 화령장이 열리는 화서면이 고원지대이듯 추풍령도 해발 240m에 위치한다.
도계를 넘어 추풍령면으로 들어서면 길가의 낮은 언덕에 신안리 석불입상(영동군향토유적 제20호)이 서있다. 고려시대의 석불입상은 도보로 서울과 부산의 중간에 위치한 반고개 마을의 수호신이다. 석불이 바라보고 있는 웅북리(곰뒤마을)에는 400년 숨결의 돌담길과 나라에 큰 변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렸다는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추풍령에 들어서니 거꾸로 내건 다방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추풍령은 영남에서 충청과 한양을 이어주던 중요한 길이었다. 교통의 요지답게 지금도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 4번 국도로 자동차와 기차가 내달리고 있다. 하지만 주막 등 옛길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고추장돼지갈비로 유명한 추풍령할매갈비와 고갯마루의 광천2리가 10여m 거리에서 경북 김천시와 충북 추풍령면을 가른다. 광천 2리의 표석에 왜 당마루(唐嶺)라고 써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지역의 변화 과정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계실 때 역사의 뿌리를 찾아내야 한다.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고개마다 한 많은 사연...' 그나마 추풍령 노래비의 가사들이 추풍령의 고단한 역사를 증명한다.
새로 생긴 4번 국도는 차들이 꼬리를 물지만 추풍령면소재지를 지나는 구도로는 차들이 없다. 세월이 거꾸로 가듯 도로변에 난전만 몇 개 있을 뿐 번듯한 가게도 발견하기 어렵다. 차라리 역사의 수레바퀴나 거꾸로 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추풍령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추풍령면사무소에 들렸다. 면사무소에서 만난 노랫말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을 가로등에서도 만난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황금면이었던 곳이 추풍령면이다. 이곳에서 만난 직원은 멋있는 소나무들이 무척 많았는데 일제 강점기에 대부분 벌목했다며 아쉬워했다.
면사무소와 추풍령역 사이에 일본식 건물이 서너 채 있다. 일제 강점기 추풍령역에 근무하던 역무원들의 사택이다. 역사는 만들어가는 것인데 관리를 하지 않아 낡았고, 여기저기 손을 대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추풍령역 안에 있는 급수탑이 등록문화재(제47호)다. 예전 사람들은 나무나 석탄으로 물을 끓여 그 증기로 엔진을 움직이는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뿜어대며 달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추풍령역은 경부선의 중간지점이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증기기관차들이 쉬면서 급수를 하는 장소였다.
현재의 추풍령역은 신청사라 번듯하다. 역사의 옛 모습은 대합실벽 높은 곳에 사진으로 걸려있다. 타고내리는 사람이 적어 옛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엇더라면 외지사람들이 일부러 구경올 만큼 운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풍령에서 백두대간이 지나는 작점고개로 향하다보면 면사무소에서 보이던 반쪽짜리 산을 만난다. 철도청에서 오랫동안 석산개발을 하다 환경단체의 반대로 공사를 중단한 곳이다. 흉물스러운 모습이 볼썽사나워 눈살이 찌푸려진다.
원인 제공자인 철도청에서 잘 정비한 후 나무를 심고 조형물을 세워 공원을 만들든지 차라리 지자체에서 필요한 만큼 더 캐낸 후 모습이 예쁜 암벽등반 코스를 만들어 활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석산개발현장에서 굽이 길을 돌아서면 죽전리의 추풍령저수지를 지난다.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이 저수지의 높이를 5m 높인단다. 저수지 옆으로 이어지는 한가로운 마을 풍경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다.
작점고개 정상에 잠깐 차를 세웠다. 백두대간을 알리는 작점고개 표석을 카메라에 담고 백두대간 안내지도에서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있는 추풍령과 괘방령을 살펴봤다. 조선시대 과거보러가는 선비들이 추풍령으로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고, 추풍령 옆 괘방령을 넘으면 '급제'했다는 일화가 재미있다.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써 붙이는 일이 '괘방(掛榜)'이다. 그러니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은 조금 돌더라도 괘방령을 넘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풍령역에서 구도로를 이용해 황간 방향으로 달리면 사부리 길가에 장지현 장군을 모신 사당(충북기념물 제96호)과 순절비가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장지현 장군은 왜적과 싸우다 전사했다. 사당 앞으로 그림처럼 보이는 산이 백두대간의 눌의산이다.
다시 차를 몰면 황금교 건너기 전에 오른쪽으로 금보사 이정표가 보인다. 사부리의 황보마을과 금보마을은 집도 몇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인데 20여 년 전 추풍령면을 황금면으로 부르게 했던 장본인이다.
첫 번째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은 황보리, 오른쪽은 금보리로 가는 길이다. 지장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3~4㎞ 이어지는 금보계곡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깨끗하고 조용하다.
금보계곡 끝에서 조계종의 작은 사찰 금보사를 만난다. 사람소리에 문을 연 주지스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날마다 쉬면서 마음을 비운다는 일휴(日休) 스님은 차를 따라주며 마음을 비우지 않는 세상을 탓한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 본인의 신장을 기증했다는 분이니 그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다.
얼마나 쓰레기를 많이 버리고 가면 금보마을 사람들은 계곡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어쩌면 자기가 앉았던 자리 깨끗하게 정리하고, 자기가 가져간 것 되가져오는 것도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작고 하찮은 일이 어디 있나. 수시로 부닥치는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을 비우는 게 행복이다. 추풍령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