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던 날,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고 즐거워했다. ‘양성산에서 잔설이 내려다보던 3월의 둘째 날 처음 만났는데’로 시작해 ‘개학하는 날 환한 웃음으로 만나자.’로 끝맺은 낱장짜리 편지였다.
많이 움직이고, 시끄럽게 떠들고, 소리 내어 웃는 게 아이들이다. 우리 반 아이들의 한 학기 생활이 그러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심리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일률적으로 통제하며 잔소리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래서 편지라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주는 반성문이었다.
가족의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어린 시절은 환경이 중요하다. 면소재지 아이들 30명의 생활환경이 천차만별이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모르고 자라는 조손가정 아이가 여럿이다. 환경을 극복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성격이 내성적이고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30명 아이들 모두가 철부지 귀염둥이다. 편지를 쓸 때 아이들 각자의 환경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도록 심성과 행동에 맞는 문구를 찾아냈다.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하는, 힘이 넘쳐 장난 잘 치는, 마음이 편해 느리게 행동하는, 엄마와 떨어져 생활하느라 힘들어 하는, 학급의 부대표로 열심히 봉사하는, 궁금한 게 많아 질문공세를 퍼붓는,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약속을 어기는, 친구들을 좋아해 수업시간에도 장난치는, 뛰노느라 공부 열심히 하지 않는, 성격이 좋아 천하태평으로 생활하는, 그림 잘 그리고 맡겨진 일 잘 하는, 속이 깊어 밖으로 잘 나타내지 않는, 학급의 대표로 앞장서 봉사하는, 할 일 다 하면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수줍은 미소로 부끄럼을 잘 타는, 멀리서 다니느라 고생이 많은, 열정이 넘쳐 모든 일에 관심을 보이는, 수줍어서 작은 소리로만 질문하는, 학급 일 모두 혼자하려고 욕심 부리는, 심성이 착한데 아는 것이 부족한, 내성적이라 잘 우는, 마음씨가 착하고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 조잘조잘 떠들며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속이 깊고 맡겨진 일 빈틈없이 처리하는, 호기심이 많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마음씨가 착해 빙그레 웃기만 하는, 마음씨가 착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부모님과 떨어져 고생하고 있는,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속이 깊어 어른같이 행동하는…….〉
방학기간의 가운데에 있는 날이다. 법적으로 쉬는 날은 아이나 어른이나 다 좋아한다. 신나게 놀기만 해도 잘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돌봐줄 사람 없는 아이들은 펀펀히 놀기만 하며 무의미하게 방학을 보내기 쉽다. 그래서 적절한 양의 과제가 필요하다.
학급소집일 날 아이들을 만났더니 방학숙제를 줄여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예 졸졸졸 따라다니며 애원하는 아이들 몇이 주동자였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지 4학년 아이들까지 방학 중 학교에 나와 보충심화학습을 하는 학교도 있는 판이다. 숙제를 줄일 수 없는 이유를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주는 것으로 입막음을 했다.
아이들은 숙제 때문에 불평했던 것 다 잊어버리고 지금쯤 신나게 놀고 있을 것이다. 편지를 쓸 때처럼 30명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에게도 유익하고 즐거운 방학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