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추밭 주인이라면?

2009.08.20 07:32:00

금년 여름에 일어난 ‘고추밭에서의 사망 사건’ 두 가지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언론에서는 단순 사고로 취급, 단신으로 취급하여 보도하였지만 사고의 내용을 알고 보니 우리들 양심이 그만치 무디어졌고 그에 비례해 사회도 각박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첫 번째 사건은 고추밭 들어갔던 남녀가 감전사한 것.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으려고 고추밭에 설치한 전기 울타리에 피서객으로 보이는 남녀 2명이 감전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7월 13일 오전 6시쯤 강원 강릉시 강동면 고추밭에서 남(33·서울), 여(41·서울) 등 2명이 숨져 있는 것을 주인 장모(63)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두 번째 사건은 도둑 잡으려다 사람 잡은 고추밭 주인이다. 농민이 고추 절도범을 잡으려다 엉뚱하게 밭에서 용변을 보던 주민에게 공기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이다. 김모(64)씨는 8월 12일 오후 8시 50분께 포천시 영북면 자신의 고추밭에서 용변을 보던 홍모(54·여)씨에게 공기총을 쏴 숨지게 했다는 보도다.

이 사건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있다. 땀 흘려 농사지은 것, 농부에게는 그것이 애지중지하는 자식과도 같을 것이다. 돈으로야 얼마되지 않지만 그 값어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야생동물이나 서리꾼들에 의해 없어졌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리 착한 농부라도 가만히 있을까?

몇날 며칠을 고민하며 그것을 지키려는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때론 이성을 잃고 범인을 잡으려 하거나 앙갚음을 하고자 할 것이다. 그 분풀이의 결과가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데도 그 순간만큼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220볼트 전기선을 설치하거나 공기총 사격을 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서객 등 평범한 시민들도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고추맛 보려고 장난으로 몇 개 따가는 것, 농부에게는 장난으로 통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절도행위다. 과거엔 농민들의 인심으로 용서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그것 값으로 따지면 시장 가격으로 몇 천원에 불과하다.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쁜 손버릇 때문에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주인 허락없이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위는 애초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양심을 버리는 행위, 처음엔 죄책감에 가슴이 두근거려 멈칫 거리지만 한 두 번 하다보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양심에 철판을 깔게 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당사자에게는 처음인지 또는 일회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다 이처럼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만약 내가 피해를 입는 고추밭 주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당장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열불이 나지만 조금 진정하고 이성을 찾을 수는 없을까?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부근 고추밭에는 “많이 열거던 따 가세요!”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얼마나 재치 있는 표현인가? 고추가 익는 것을 함께 지켜보고 공동파수꾼이 되자는 점잖은 표현이다.

아내는 “고추를 따고 싶으세요? 고추 하나에 만원” 문구 제안을 한다. 만약 내가 위 사건의 농작물 피해 농부라면 어떻게 할까? 인명사 사건으로 만들어서는 아니된다. 최소한 “위험! 감전사”, “고추 절도범, 공기총 사격”으로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경고를 하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고추를 따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고추 절도 금지! 혹시 고추가 필요한 분은 연락 바랍니다. 소량을 무료로 드립니다. 011-1739-7606” 이렇게 간곡하고 완곡하게 표현했는데도 고추를 훔쳐갈까?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고추서리에 주춤하지 않을까?

양심 교육이 질실하다. 어른들의 양심적인 행동이 자식 교육에 있어 커다란 본이 된다고 본다. 아울러 생명 존중 의식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농작물이 소중한들 사람의 생명에 비할까? 이번 고추밭 사망 사건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국민교육으로 승화시켜 우리 국민들의 의식을 한 단계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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