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아침을 단동에서 맞이했다. 늦게 잤지만 모닝콜 시간보다 30분 이른 5시에 일어났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커피까지 마시고 식당으로 갔다. 어금니를 치료받다 여행 온 게 탈이었다. 치통이 심해 부드러운 빵 몇 조각 먹는 것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여행지에서 이렇게 아파 고생하는 게 처음이라 신경 쓰이는데 옆자리의 중국인들은 수저를 놓자 담배부터 피워댄다. 그러고 보니 4성급 호텔의 테이블 위에 재떨이가 놓여있다.
이틀째 처음 찾아가는 곳은 1시간 거리의 호산장성이다. 단동역을 지나는데 역전에 모택동의 대형 동상이 서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모택동과 등소평을 보는 중국인들의 시각이 확연히 다르다. 잘사는 사람들은 개방정책을 펼친 등소평을 존경하고, 못사는 시골 사람들은 없이 살았어도 생활수준이 비슷하던 모택동 시절을 그리워한다.
한국의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된 것도 근래의 일이다. 한국의 실정을 거꾸로 알린 정책 때문에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남한이 북한보다 못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중수교, 한국의 올림픽 개최, 조선족들의 왕래가 한국 사람들의 부유한 생활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압록강에 만들어진 섬들은 월량도를 제외하고 모두 북한 땅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빌미를 만들어준 게 위화도 회군이다. 위화도와 북한 건물들이 차창 밖으로 길게 이어진다. 아침부터 고기를 잡는 중국인과 강 가운데 떠있는 북한의 모래채취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이 없는 압록강을 바라보며 같은 민족끼리 철조망을 쳐놓은 휴전선을 떠올린다.
생활습관이 달라 중국인 마을과 조선족 마을은 쉽게 구분이 된다. 집 색깔이 붉은색이면 중국인 마을이고 집 색깔이 회색이면 조선족 마을이다. 말을 키우고 오리가 많으면 중국인 마을이고 소를 키우고 닭이 많으면 조선족 마을이다. 중국인들은 닭이 파드득 거리는 것을 싫어하고 조선족은 오리의 느린 행동을 싫어한다.
동북쪽의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통틀어 동북3성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국경선과 가까운 동북3성에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200만 명 중 150만 명이 살고 있다. 이곳 동북3성이 바로 2002년부터 동북쪽 변경지역의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과 우리의 찬란했던 역사가 대립하는 곳이다.
그래도 한국과 왕래가 이뤄지며 조선족의 생활수준이 중상위 그룹으로 높아진 것이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은 이곳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한 달 과외비가 30-40만원 지출될 정도로 과외 열풍이 불고 있어 학교에서 주 5일제 수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과외 받느라 쉴 틈이 없다. 교육열이 조선족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니 다행이기도 하다.
단동시내에서 압록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30km 정도에 위치한 호산장성에 도착해 바로 옆에 있는 '일보과(一步跨)'부터 들렸다. 압록강의 하중도인 우적도(북한)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한 발짝만 건너뛰면 북한 땅이다. 바로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순찰하던 북한 경비병에게 중국인이 말을 걸자 대꾸를 한다. 중국과 북한이 이렇게 가깝게 살고 있다는 것과 분단의 한을 실감하는 현장이다. 앞에 있는 중국의 나룻배를 타면 초소에서 접근하는 북한 병사를 만나 악수를 할 수 있다는 곳이기도 하다.
호산장성은 비사성과 이어진 천리장성의 일부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해 고구려가 세운 박작산성으로 추정되는 성곽이다. 하지만 1990년대 만리장성을 닮은 중국성벽 형태로 복원하였고, 세계유산인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으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며 중국에서 만리장성의 동단이라 주장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중요 장소이다.
최고봉이 146m에 불과하지만 삼면이 강으로 둘러 싸여 있고 산 형세가 마치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호산장성으로 부른다. 단동쪽 방향을 방어하기 위해 호산의 서쪽 지형으로 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곽의 모양이 동녘을 방어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게 안타깝다. 누가 심었는지 호산장성 입구에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어 느낌이 남다르다. 성안에 남아있다는 고구려의 옛 우물 유적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온 것도 아쉽다.
기독교 신자인 아내가 산성 아래 마을에 있는 십자가를 보고 반가워한다. 중국은 공산당이 실권을 쥐고 있지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나라다. 도교 신자가 가장 많고 불교와 기독교 신자도 늘어나고 있다. 여러 명이 빗자루로 주차장을 쓸고 있는 모습이 우리가 예전에 했던 새마을운동을 닮았다.
호산장성에서 나와 집안으로 한참을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선다. 중국에서 도로공사는 국가의 중요사업이고 중국 사람들은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도로공사 현장을 만나 집안으로 가야 할 차가 환인으로 향하며 2일째 일정과 4일째 일정을 맞바꾼다.
단동에서 환인까지는 2차선 국도를 4시간 달려야 한다. 교통량이 적어 오가는 차량들을 가끔 한 대씩 만난다. 이곳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게 온통 옥수수 밭이다. 냇가에서 배터리로 고기 잡는 모습 등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 재미있다.
중국의 많은 인구 중 한족이 92%를 차지한다. 나머지 55개의 소수민족이 8%에 불과해 대학입학 시험 등에 8%의 가산점을 주며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소수민족 중 제일 잘살고 대학입학률도 1위라니 반가운 소식이다.
인구 30만 명의 30%가 만주족 사람들인 만주족 자치구 환인에 들어섰다. 환인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기후가 좋아 농작물의 품질이 우수하다. 이곳에서 회색과 검은색을 띠고 있어 회강, 흙강으로 불리는 비루수(혼강)를 만난다. 압록강으로 흘러가는 비루수를 바라보며 부여의 금와왕과 유화부인 사이에 태어난 주몽이 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건국하던 과정을 생각해본다.
점심을 먹고 환인시에서 8km 떨어진 오녀산성으로 향한다. 환인의 지명도를 크게 높인 것은 고구려의 첫 수도 졸본성의 터로 추정되는 오녀산성으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재에 등재되었다. 자연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오녀산성(五女山城)이라는 이름은 오랜 옛날 이곳에 살며 산과 마을을 수호해 주던 다섯 명의 여신이 흑룡과 싸우다가 전사한 것을 기려 붙여졌다.
오녀산성을 멀리서 보면 800m의 높이에 윗부분은 바위덩어리를 반듯하게 자른 듯 100여m의 직벽으로 되어있어 신비롭다. 산성에 오르려면 입구의 발전소를 지난 후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이곳을 오르내리는 셔틀버스는 아찔하게 느껴질 만큼 과속을 일삼으며 크랙숀을 눌러대 만만디로 살아가는 중국 사람들과 다르다.
힘이 들지만 1,000여개의 계단이나 편평한 돌을 끼워 맞춘 18구비의 옛길 십팔반(十八盘)을 이용해 정상에 오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입구에 가마가 대기하고 있어 노인이나 환자도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데 이용비를 80,000원이나 요구한다. 암벽사이에 계단길이 있는 천창문(天昌門)을 지나면 오녀산성을 만난다.
오녀산성은 밑에서 볼 때와 달리 동서 200-300m, 남북 1500m 넓이로 사람이 많이 살 수 있을 만큼 편평하다. AD 3년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할 때까지 40년 간 수도였던 곳이라 고구려 졸본성의 흔적이 많다. 성터, 궁궐터, 곡식창고, 대형 맷돌, 집단숙소, 물이 나는 천지(天池), 왕이 사용하던 목욕간 등이 남아있다. 특히 전쟁을 지휘하던 점장대에서 바라보는 댐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다.
환인에서 통화까지는 2시간 거리지만 굽이를 돌고 산비탈을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해 지루하다. 단동에서 통화까지의 도로확포장 공사 현장을 수시로 만나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그래도 같은 모습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길 막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 외지에 나가 일하던 사람들이 큰 짐 보따리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풍경들이 지루함을 달래준다.
차로 먼 길을 달리는 대장정이라 가로등이 불을 훤히 밝힌 후에야 통화에 도착했다. 길림성의 통화는 백두산 천지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하룻밤 묵는 코스다. 인구 60만의 통화시는 강철, 포도주, 제약공장이 있어 알부자 동네로 소문나있다.
저녁에는 실컷 먹을 수 있을 만큼 삼겹살이 나왔다. 하지만 치통으로 고생하는 판에 입맛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앓던 이 쏙 빠지는 기분을 맛보고 싶지만 이곳에는 치과가 없다. 통화로 오는 길에 가이드가 차를 세우고 신문지로 꼬깃꼬깃 싼 진통제를 사줬는데 효과가 없다. 신경 쓰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내가 겪어보니 여행지에서 몸 아파 고생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겠다. 일행들이 마사지를 받는 동안 밖에서 소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더니 치통이 덧날까봐 아내가 깜짝 놀란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천지와 만나는 날이다. 천지가 맑은 모습으로 문을 여는 시간에 오르기 위해 모닝콜이 5시에 약속되었고, 치통이 멎어 둘째 날 밤을 편안히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