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하늘의 문 활짝 열고 반긴 '백두산' - 3

2009.08.27 16:39:00

드디어 백두산 천지를 만나는 12일이다. 일찍 일어나 창밖의 날씨부터 살폈다. 안개 속 통화시내의 아침 풍경이 우중충하다.


오늘도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다. 통화에서 백두산 입구까지 관광버스로 3시간 30분, 입구에서 5호 경계비 주차장까지 셔틀버스로 40여분 이동해야 한다. 다시 주차장에서 약 30분 동안 1,236개의 계단을 올라야 천지를 만난다. 무척 피곤한 일정인데 일행들은 가이드의 요구대로 잘 따라주며 천지를 만날 설렘에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시내의 도로변에서 만난 중국 군인들의 모습이 왠지 태만해 보인다. 중국에서는 고위관료들의 자식이라야 군에 간다. 입대하면 월 1,500위안(한화 30만원) 정도의 봉급을 받아 공부하기 싫어하는 말썽꾸러기 자식의 도피처로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됨됨이가 올바른 사람을 만들려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어느 나라나 농촌에서는 총각신세 면하기 어려운가 보다. 중국의 농촌 여성들이 도회지나 외국으로 나가면서 결혼 못하는 농촌 총각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선족 총각들은 문화가 같고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탈북 북한여성들을 원하는데 결혼 후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해 갈등을 일으킨다.


중국에는 어렵게 국경선을 넘어온 탈북자들이 무척 많다. 탈북하게 된 사연도 가지각색이고 살아가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북한에서는 부모가 죄를 짓고 도피하면 18세 되는 해부터 자녀가 부모 대신 벌을 받아야한다. 18세 되기 전에 탈북 할 수밖에 없지만 중국의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가하면 중국에서 열심히 일해 국적도 취득하고, 북한의 자식이 잘살게 돈을 보내는 부모도 있다.

세계 최고의 요리가 중국의 곰발바닥 요리다. 백두산에 반달곰 야식지가 있고 중국에서 최우량 곰이 백두산 곰이다. 눈에 넣으면 핏기가 금방 없어질 정도로 진짜 곰쓸개는 약효가 좋다.

최명 가이드로부터 중국과 북한의 실상에 관해 들은 후 백두산에 관한 비디오를 감상했다. 통화를 출발할 때 안개가 잔뜩 끼어 걱정했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날씨가 맑다. 국경선의 변방이라 한적할 줄 알았는데 오가는 차량들이 많다.

차가 터널을 한참 달린다. 터널에서 차량들이 전조등을 이용해 차선을 양보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곳의 터널들은 불빛이 없어 미로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터널을 오가는 차량들은 모두 전조등을 켠다. 어제 통화로 들어설 때 해바라기들이 반기더니 송강하로 가는 길가에 키가 작은 코스모스들이 많다.

통화에서 출발한지 2시간 정도 되었다. 백두산 부근의 중국 사람들이 한국보다 30년 정도 뒤진 생활을 하고 있다더니 소가 짐수레를 끄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이곳의 결혼식 풍습도 우리와 비슷한가보다. 신랑신부가 탈 차에 풍선을 많이 매단 모습이 우습다. 축하객들이 타고 온 차량인지 길가에 낡고 작은 차들이 여러 대 서있다. 낯선 사람들이지만 결혼하는 부부가 백년해로하길 빌었다.


화장실에 들를 겸 조선족이 운영하는 고구려휴게소에서 인삼, 산나물, 꿀 등을 눈요기 했다. 시원한 지하수로 손을 씻었더니 금방 피로가 풀린다. 한국의 식당에서 일해 벌어온 돈으로 차린 휴게소라 주인이 우리나라 실정을 잘 안다.


백두산 아래 동네인 송강하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일행들과 하루 종일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하며 백두산 입구로 향했다. 백두산 여행은 천지를 중심으로 산세가 험준해 전문트레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북파와 완만한 고산지대라 일반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서파로 코스가 나뉜다. 우리 일행은 서파 코스로 천지에 올라간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화산활동을 하던 사화산으로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자리 잡고 있다. 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하고 연중 눈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한다. 백두산은 경치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동북호랑이를 비롯한 희귀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도 많다.

말 그대로 '흰 머리 산'이라는 뜻의 백두산은 한국 사람들만 부르는 이름일 뿐 이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말이 아니다. 정상 부근이 눈 때문에 희게 보이고 줄기가 길게 이어진 산이라서 중국이나 북한 사람들은 장백산이라고 부른다. 


침엽수림이 울창한 1,000m 높이의 백두산 입구 매표소도 장백산이라고 써있다. 5호경계비 주차장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베테랑 운전자들만 셔틀버스를 운행하는지 무척 빠른 속도로 올라 하늘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다. 굽이를 돌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천지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다. 1,500m 이상에는 이끼만 있는데 이곳에 고산토끼와 쥐가 산다. 해발 1800~2400m의 고산화원은 6월에야 봄이 찾아와 1,800여종의 들꽃으로 야생화 천국을 만든다. 고산화원은 완만한 구릉지라 가지각색의 야생화 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백두산은 흡연금지 구역이다. 꽃 한 송이도 꺾을 수 없다. 태극기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비디오 촬영도 제한한다. 숲에서 소변을 봐도 돈을 요구한다.

우천 시에는 번개 때문에 우산대신 우비를 입는 것이 좋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모자 날아가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 백두산 정상 주변의 장사꾼들은 중국 정부에 세금을 많이 낸다. 물건 값이 비싸고 토비(산적)에 비유할 만큼 상술이 고래심줄같이 질기다.

천지의 날씨는 수시로 변한다. 그래서 여자의 마음에 비유한다. 누가 지어냈는지 백두산 정상에 올랐지만 천지를 못보고 간 사람이 천지라 천지라고 한다는 얘기가 재미있다.




5호 경계비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 1년에 하루밖에 없는 날씨처럼 맑고 파란 하늘이라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맑은 날씨를 보자 평소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만 온 것 같다며 가이드가 더 좋아한다. 아이들 마냥 가이드를 졸라 이곳에서 2시간을 머물기로 했다.

천지 오르는 길에는 나무가 없다. 날씨가 좋아 땡볕이지만 천지만 제대로 보면 된다. 높이에 비해 걷기 편한 1,236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며 주변의 풍경과 야생화를 감상했다. 보이는 풍경이 모두가 장관이다. 날씨가 좋아 신이 난 가마꾼들도 "가마타요. 힘들어요. 싸요."를 크게 외친다.

오르내리는 관광객들 사이로 2,470m 높이에 있는 5호경계비와 총을 들고 서있는 중국군 병사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표석 5호경계비의 양면에 '中國5'와 '조선5'가 써있다. 이 표석이 바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비이다. 백두산 천지의 2/5는 중국이, 3/5은 북한이 관할하고 있는데 북쪽 땅은 왠지 황량해 보인다.




와! 천지다. 불규칙한 기후, 거센 바람, 폭풍우로 아름다운 광경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천지가 하늘의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내 눈앞에, 내 발아래 천지가 아름다운 세상을 펼쳐놓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가슴 벅찬 감동을 몇 번이나 경험했던가? 천지의 감격적인 모습에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백두산 풍경 중 최고로 꼽히는 천지는 화산의 분화구(칼데라호)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 위치한다. 11월에 얼어붙었다 6월이 되어야 녹는데 식수로 사용할 만큼 수질이 깨끗하다. 해발 2,200m, 전체 면적 10㎢, 호수 주위 길이 13㎞, 평균수심 204m인 천지가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백두산의 최고봉은 2,744m의 장군봉이다. 장군봉을 필두로 향도봉(2,712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천문봉(2650m)이 한눈에 들어온다.

5호경계비와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맥주를 두 캔이나 마셨다. 똑같은 장면인데 보고 있을수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난시라 쉽게 피로를 느끼는 눈이건만 천지를 보고 또 보고,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도 피곤하지 않다. 감동의 물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어느새 1시간이 지나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상술이 고래심줄이라더니 중국인 사진사가 4만원에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 12장을 CD에 담아주겠다며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날씨가 좋아 값도 깎아주겠다고 유혹하는데 사진은 잘 찍는다.


내려오는 길에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서너 모금 마셨더니 속이 시원하다. 집에 가져가 아이들 먹게 하려고 PT병에 물도 받았다. 자세히 보니 물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인이다.

백두산 관광객의 80%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서글퍼진다. 중국은 백두산을 10대 명산으로 지정했다. 이곳을 다녀간 중국인들에게 백두산이 자기네 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동북공정을 완수하려는 술수가 숨어있다. 중국에서 관광 다니는 사람들은 상류층이고 그들이 중국의 정책을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천지에서 북한 군인을 찾아볼 수 없다. 5호경계비 옆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에 서있는 4명의 군인은 모두 중국 군인이다. 휴전선에는 철조망을 쳐 논 채 총부리를 남쪽으로 겨누고 있으면서 중국 군인들이 북쪽 땅에 넘어와 있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한심스럽다. 북한 정권이 흔들렸을 때 백두산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된다.




셔틀버스에 올라 계단 모양의 소협곡 제자하로 갔다. 제자하는 제운봉 양측에서 발원한 물이 흐르는 작은 협곡으로 바닥은 현무암이다. 층층으로 나누어 보이는 모습이 계단을 닮았는데 횡단면의 위는 좁고 아래는 넓다. 물이 지하 깊숙이 스며들어 흐르고 일부는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려 지하하(地下河)로도 불린다. 백두산의 관광지 치고는 볼거리가 없는 게 흠이다.










대협곡은 백두산의 용암이 분출할 때 만들어진 V자 형태의 협곡으로 폭 200m, 깊이 100m, 길이 70km 규모로 웅장하다. 기암괴석과 가파른 경사면 아래로 맑은 물이 유유히 흘러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풍경을 연출한다.

연리지 모습의 나무, 가족처럼 자라는 나무 등 특이한 나무들이 많고 천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숲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삼림욕을 하며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도 해소했다.


셔틀버스에 올라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입구로 갔다. 저녁을 먹은 후 오던 길을 되짚어 통화로 향했다. 숙소인 회풍호텔까지는 3시간 30분 거리인데 가로등이 없어 창밖이 암흑세계다. 눈을 감고 천지에서 본 풍경과 감동을 떠올렸다. 하루 종일 어금니 아픈 것을 모르고 지낸 것도 활짝 문을 열고 반긴 천지 덕이다. 늦은 시간 숙소에 도착해 여정을 정리하고 셋째 날을 마무리했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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