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자식’으로 키우기

2009.08.27 21:13:00

우리집 이야기다. 아내가 종합병원 응급실에 갑자기 입원하였다. 귀가하니 밤 1시다. 고등학생인 딸은 잠들어 있고 아들은 공부하고 있다. 엄마가 입원했다고 하니 무슨 병이냐고 캐묻는다. “응, 병명은 모르고…. 결과가 나와 봐야 알지.”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아들이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있다.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린 아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딸의 방을 열었다. “엄마, 안 계시다. 어제 입원하셨어.” 내 말에 곧바로 일어난다. 아침마다 아내의 잠자는 딸 깨우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 6시 40분인데 늦었다. 빨리 일어나야지.” 아내의 공식화된 말이다. 늦게 일어난 딸은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통학버스 타기 바쁘다. 그러던 딸이 이제는 꾸물거리지 않는다. 아마도 상황을 눈치 챈 듯하다. 딸은 달걀 두 개를 풀어 후라이까지 한다.

등교시각 순서에 따라 딸, 아들이 집을 나갔다. 식탁 위를 보니 계란 후라이와 토마토 한 조각이 놓여져 있다. 아빠를 위해 딸과 아들이 준비한 것이다. 이게 바로 아내의 빈자리를 자식들이 메운 것이다. 자식들에게 한 편 미안하기도 하고 자식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문득 ‘독립군의 자식’이 떠오른다. 이 용어는 서울대학교 모 교수가 해마다 학교 의 주요보직을 맡아 제자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제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일컬은 말인데 그 교수에게는 충격적인 피드백이 되었다고 한다. 독립군이 한반도를 떠나 만주 벌판이나 중국 땅에서 독립운동을 했듯이 지도교수가 학교나 학과 밖에서 주로 활동하느라 박사학위를 지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제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학위를 따야 하는 것이다.

교수생활 초기 8, 9년간 제자들을 자상하게 지도했던 교수가 주변 여건의 변화에 따라 교수 스타일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 교수는 총 40여명의 박사제자를 배출했는데 그들 중 30명 이상이 대학교수로 임용되었고 나머지는 상담전문가로, 100퍼센트가 전문직 종사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독립군의 자식’의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요즘 우리네 가정, 자식이 하나 아니면 둘이다. 부모마다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키운다. 상전 모시듯 한다. 부모는 가난하게 자랐어도 자식은 풍족하게, 부모는 못 배웠어도 자식만큼은 대학까지 보내 번듯하게 키우려 한다. 집집마다 자식들 비위맞추기에 바쁘다. 자식들은 부모의 성화에 마지못해 공부하며 그것이 마치 부모를 위해 하는 것인 양 하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 부모가 정성을 쏟는 것 당연한 일이다. 잘못된 것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 때론 거룩하고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 한 번쯤 생각해 보자. 자식을 위한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 지금 이대로 계속되어야 하는가?

필자는 몇 년전부터 자식들을 독립군의 자식으로 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아마도 자식들이 중학생 때부터인가 보다. 부부맞벌이에 부모로서의 부족한 뒷바라지를 책임 회피하고 변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희들, 부모에게 기댈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라. 부모의 재산은 노후에 실버타운에 들어갈 비용이다. 너의 인생은 바로 네 것이다. 자신의 삶은 바로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한다. 부모가 너희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마치 어미 사자가 새끼 사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형국이다. 어찌 보면 부모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자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서운 부모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가? 방학 때나 주말에 부모가 없을 때는 알아서 식사를 준비하고 끼니를 해결한다. ‘배 고프다고? 부모가 차려 줄 때 기다리지 말고 각자 식사는 해결해야지…’하는 아빠의 무언 메시지를 받아들였나 보다.

‘독립군의 자식’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하는 방식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부모는 자식 뒤치다꺼리만 할 것인가? 이제 그 지나친 지극정성과 과잉보호, 그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자식들이 알아서 스스로 공부하고 학교에서 교과우수상 등 각종 상장을 타올 때면 자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정교육과 자식교육,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모른다. 우리 부부는 초보 아빠, 초보 엄마이기 때문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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