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옥과 피지옥을 구경하다 -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2

2009.10.05 11:03:00

우사신궁에 신라범종이...

일본에서 맞이하는 9월 7일에도 태양은 밝게 떠올랐다. 호텔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오전 8시 30분경 우사신궁으로 향했다. 해지옥과 피지옥을 보러 다시 벳부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어떻든 '짧고 굵게 보는 날'이 될 것이라는 말을 기대하며 길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구경했다. 나라와 민족이 다를 뿐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다만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는 일본인들의 습관 때문에 길거리가 깨끗한 것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오전 9시 20분 경 입구에 도착해 안내판을 보니 우사신궁을 '전국 하치만신의 총 본궁으로 상궁 본당은 국보, 광대한 경내는 국가사적, 이치이떡갈나무 숲은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치만은 대륙문화를 수입해 추앙받는 오우진 천황의 신령이다. 작은 다리를 지나자 '고마(코마)이누'가 맞이했다. 고마이누는 신사를 지키는 상징물로 '고구려 개(犬)'를 뜻한다.

가야 사람들이 이곳에 철을 전해줬고, 최초에 철의 신을 모셨던 곳이 우사신궁이다. 탐방에 같이 참여한 포철 직원에게 포항제철에 제련기술을 전수했던 NSC(신일본)제철소 공장이 이곳 오이타에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역사는 돌고 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전해준 것이더라도 신기술은 다시 배워 와야 하는 게 문명의 흐름이다.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은 전문 교수님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문화해설을 해줘 배울 게 많았다. 신궁에 도착하자 정용호 교수님이 신사와 천황의 관계, 신과 인간의 중간 매개체인 새가 머무르던 도리 등 일본과 우리 문화의 관계를 여러 가지 들려줬다.

'우리의 홍살문을 떠오르게 하는 붉은색 도리가 화재를 방비하는 역할까지 한다. 일본의 민속 신앙체계는 신토(神道)로 고유의 다신교 종교다. 신사도 천황을 중심에 두지만 현실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신을 믿는 현세구복 신앙이라 신사와 절이 같이 있는 곳이 많다.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닌데 비해 성인식은 휴일 날 신사에서 성대하게 거행한다.

기쁘거나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계절이 바뀔 때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신사다. 신사에 오면 손과 입을 씻고, 방울 흔들고 박수 두 번 치며 신을 부르고, 돈을 넣고 두 번 절하고, 손뼉을 네 번 치고 또 두 번 절하고 소원을 빈다. 교통안전, 수험생합격, 결혼 등 신사마다 전문분야가 있을 만큼 역할이 다르다. 운세 뽑기로 길흉을 가리고 그것을 신전 앞에 묶어놓고 가면 신이 길흉을 거두어간다고 믿는다. 1월 1일부터 3일 사이에 일본인 1억 3천만 명의 3/5이 신사를 참배한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에서 나온 문서에 멀리서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가 적혀있다. 숭유억불정책을 쓰던 조선시대 유생들이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을 스님을 높여 부르는 화상에 비유하며 불교를 깎아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범종의 '종'자는 1974년 한국범종학회에서 쇠북 종자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에 있는 우리의 종 70여개 중 20여개가 일본 보물로 지정되었다. 국내에 있는 신라의 종은 752년에 주조된 상원사 동종과 성덕대왕신종 2개인데 일본에는 무려 6개가 있다. 우사신궁에 있는 범종은 위치를 아는 4개의 신라종 중 하나다.'

설명을 들은 후 우사신궁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부터 관람했다. 탐방단이 우사신궁에 들른 가장 큰 이유가 이곳에 있는 신라범종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 범종은 신라시대 전형적인 청동주조법으로 만들어졌고 조성연대 등이 새겨진 명문이 있다. 촬영을 금했지만 우리 것을 자세히 알고 싶어 카메라에 담았다.

해지옥의 유황불이 끓는데...

오전 10시 30분, 다시 벳부로 향했다. 벳부에는 온천의 물색깔이 피같이 붉은 피지옥, 바닷물같이 푸른 해지옥 등 화산의 나라를 확인시키는 9개의 지옥관광지가 있다. 온천, 원숭이산과 함께 벳부의 명물로 통하는 지옥 중 가장 크고 볼거리가 좋다는 해지옥에 도착하자 유황냄새가 진동한다.




해지옥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연못 사이로 수증기가 높이 솟아오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98도 온천물이 투명한 옥색이라 매혹적이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풍경에 예서제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가까이에 있는 피지옥은 규모가 작은데 핏빛을 닮은 붉은 열탕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는다. 수련과 가시연이 꽃을 피운 유리온실과 야자수정원도 구경거리다.

지옥이라는 이름은 지하 250~300m에서 100℃ 전후 열탕과 분탕이 분출하는 모습이 지옥을 연상시켜 붙여졌다. 지옥에서 김이 펄펄 나는 온천물로 달걀을 삶아 파는데 먹어보니 말랑말랑하다. 화산이 주는 재앙을 슬기롭게 이용해 돈을 번다.

오전 11시 20분부터 12시까지 해지옥을 관람하고 차에 오르자 "지옥구경 잘하셨습니까?"가 인사다. 막 해지옥과 피지옥을 구경하고 온 사람들끼리 건네는 말이라 재미있다. 뜬금없이 지옥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지옥의 온천물에 들어가면 얼마나 뜨거울까?'를 생각하며 죄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5분 거리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곳 식당도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를 지나도록 되어있다. 그러고 보니 계산적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알 먹고 꿩 먹기를 하는 게 일본 상술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경 일본 최대 석불군을 보기위해 우스키로 향했다.

차량 안에서 가이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5호차에 탑승한 탐방단원들은 앉아서 복을 받았다. 5호차를 담당한 가이드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하나라도 더 전해주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았다.

'일본은 위험한 화산 때문에 혜택을 누리는 것도 있다. 토양의 25%인 화산재가 빗물을 땅속으로 스며들게 하고, 지하수는 땅속에서 깨끗하게 정화된 물이라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길옆으로 보이는 삼나무 숲들이 참 아름답다. 그런데 단단한 편백나무(히노끼)와 달리 삼나무 화분알레르기 환자가 일본인의 20%에 달하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 애물단지로 방치되고 있다. 교토와 오사카는 법으로 공회전을 금할 만큼 환경오염방지와 문화재보호에 신경 쓴다.'

우스키 석불군에서 과거의 일본을 발견하며...

경주의 남산을 연상케 하는 우스키 석불군에 도착해 발굴 초기부터 이곳을 답사하며 한일마애석불을 연구하신 정영호 교수님의 문화해설을 들었다. 정 교수님은 교통 불편을 감수하며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시절을 회상하셨다.




'석벽에 새긴 글자, 그림, 불상 등을 마애라 한다. 독자적으로 남만 문화가 개화했던 오이타에 석조미술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우스키가 있다. 우스키에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걸쳐 조성되었지만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조각했는지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마애석불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다. 걸작으로 꼽히는 대일여래상을 비롯해 일본에 있는 석불의 2/3가 한곳에 모여 있는 석불 박물관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게 불상의 얼굴이다. 암벽을 깎아 만든 우스키의 마애석불들은 빙긋이 웃는 우리의 마애불과 표정이 다르다. 편안해 보이지 않는 석불들이 과거의 일본이었다면 석불군 앞으로 펼쳐지는 농촌마을의 한가로운 풍경은 현재의 일본이다.

우스키의 마애석불 앞에서 서산마애삼존불 등 우리나라의 마애불이 얼마나 미술적 가치가 높은지를 떠올린다. 일본은 석산이 드물어 석불이 많지 않은 나라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석불의 조형미를 공부한 일본인들이 경주의 석굴암을 보고 놀라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일정을 끝내고 오후 2시 30분경 오자이항으로 갔다. 후지마루호를 배경으로 차량탑승 탐방단원별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승선했다. 후지마루호는 배에 오를 때마다 출입국 심사과정을 거친다. 몸이 후지마루호에 적응을 하는지 419호의 침대에 눕자 집같이 포근하다.

오후 4시에 후지마루호가 오이자항을 출항한 후 극장에서 영화 <예스맨>을 감상했다. 'NO'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부정적인 남자 칼 알렌(짐 캐리)이 친구의 권유로 '인생역전 자립프로그램'에 가입해 모든 일에 'YES'라고 대답하면서 인생이 180도 뒤바뀌는 내용이다. 어린이들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극정적인 자세를 갖도록 교육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짐 캐리의 "청주 날씨는 어때요"라는 우리말 대사 때문에 한바탕 웃기도 했다.

선내 식당에서는 바다풍경이 잘 보이는 자리가 명당이다. 창가에서 석양빛에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양식 코스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쉴 틈도 없이 선상대학에 참여해 손승철 교수님의 '조선통신사와 21세기의 한일관계' 강의를 들었다.


'왜구는 고려 말 혼란기에 도서, 해안지방은 물론 내륙 깊숙이 침입해 약탈을 일삼았다. 고려는 사절파견과 최영, 최무선, 이성계 등 군사적 대응으로 맞섰는데 이성계는 황산대첩 승리를 기반으로 조선을 건국했다. 일본에 안정된 정권이 등장하면서 조선과 일본은 조선통신사와 일본국왕사를 파견하며 우호적인 교린관계를 유지했다. 삼포를 개항하고 상호 무역이 이뤄지던 교린관계가 1592년 풍신수길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이씨단지, 김씨단두 등의 사진과 귀무덤 등이 그 당시 왜구들의 만행을 알려준다. 1604년 사명대사를 파견해 통신사를 부활하며 다시 평화의 시대를 열었으나 1872년 왜관을 점령해 침략을 시작한 후 1910년 한일합방에서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의 불행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500년 동안 끝없이 우정과 배신을 반복한 역사로 통신사는 조선시대의 한류였다. 조선통신사는 선진문화를 전하면서 일본의 국정을 알아보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풍랑을 만나 모두 죽는 등 일본을 다녀오는 8개월에서 2년여 기간에 죽은 사람이 많았다. 일본은 끊임없이 한류의 영향을 받았고 조선통신사가 왕래한 길을 따라 온 한민족사 탐방단원들은 21세기의 통신사다. 지금까지 적대적인 관계에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까운 이웃으로 발전해야 한다.'

특히 '일장기를 달고 있는 일본배가 아니라 태극기가 펄럭이는 우리 배를 타고 일본의 항구에 입항하는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이 되어야 한다'는 손 교수님의 얘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좁은 나라지만 사는 곳마다 얘깃거리가 다르다. 선상대학이 끝나고 419호 식구들과 일상사로 얘기꽃을 피우는데 12시 10분경 세토대교를 지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일본의 지중해로 불리는 세토내해(세토나이카이)는 조선통신사들이 오가던 교통중심지였다. 뱃전은 세토내해의 명물인 세토대교의 밤풍경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추억남기기를 하느라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충북교육청 김기선 장학사 일행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정이 빠듯해 피곤한지 선실에 들어오자 하나, 둘 잠자리에 든다. 정신이 또렷했지만 일행들에게 맞춰주기 위해 하루의 일정을 대충 정리한 후 잠을 청했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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