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오후면 으레 고향 마을과 들판을 한 바퀴 돌아본다. 거절하는 아이들과 달리 아내는 꽁무니를 따라나서며 옛 추억을 챙겨준다. 자연을 벗 삼은 순수의 세계를 즐기며 아내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 청주의 서부에 위치한 내 고향마을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청원군 강서면 내곡리가 1983년 2월 15일 강서2동 관할의 내곡동으로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시가 되고 2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자연환경은 여전히 변두리의 농촌마을이고, 사람들도 도회지물을 덜먹어 순박하다.
디지털 청주문화대전에 '골짜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안골, 소래울 또는 내곡(內谷)이라 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내곡은 안골이 한자화 된 이름인데 소래울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정확한 증언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지형이 좁은 마을의 모양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한다.
고향의 산에서 쇠꼬챙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던 시절이 있었다. 이곳이 삼국시대의 접경지였고, 가끔 옛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청주시 신봉동의 백제유물전시관에서 고향의 유물을 보고나서야 알았다.
나이 들면서 고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집 자리와 조선말기 법당 터가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부고속도로 하행선 음성휴게소에서 머리가 없는 석조여래입상을 만나기도 했다.
석조여래입상은 방죽 옆 야산(부처당골)에서 마을과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조여래입상의 머리가 감쪽같이 사라진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는 기독교 신자였던 마을분이 사람들 몰래 망치로 불상의 머리를 떼어내 방죽으로 굴렸다는 게 정설이었다.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고려전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이 중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며 음성휴게소 전시관의 야외전시장으로 옮겨졌다.
고향 마을의 굴량말이라는 지명에서도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굴량말의 어원인 군량마을은 군대의 양식을 대던 마을이다. 군인들이 대치하던 삼국의 접경지였기에 신빙성이 있다. 이곳 원고개에 장수를 살리고 죽었다는 말 무덤이 있다. 무덤 주변의 풀을 깨끗이 제거한 것으로 봐 누군가 관리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오랜만에 찾아 어느 것이 말 무덤인줄 위치가 불분명하다. 다만 말 무덤이 있는 원고개는 마을 사람들이 넓은 들판이나 건너편의 북쪽(한양)을 향해 소원을 빌던 고개였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들길을 가로막았고, 충북선 철로가 동서로 마을을 통과한다. 그 옆에서 또 다른 각을 이루며 자동차전용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모두 마을 사람들의 교통 편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도로들이다. '우는 아이 젖 한 모금 더 준다.'는데 조상대대로 지키던 농토를 항의 한번 못하고 내줄 만큼 착한 사람들이다.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 입구에서 작은 소래울을 찾은 사람들을 맞이한다. 우리가 어릴 때 심겨진 나무라 흘러간 세월을 알게 한다. 나무 앞으로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들판과 방죽, 중부고속도로와 충북선 철로, 자동차전용도로 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 아래 그늘의 벤치에 앉아 꼬마들이 수영을 하고 고기를 잡던 웅덩이가 있던 자리도 어림으로 짐작해본다.
고향에 온 사람들의 차량들이 나무 옆을 부지런히 오갔다. 뭐가 그리 급한지 차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옛 추억에 젖는 사람이 없다. 객지에서 아등바등 살다보니 삶의 여유를 빼앗겼나보다. 내년에는 이곳에서 막걸리 파티라도 벌이며 고향에 온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도록 해야겠다. 고향 사람들에게라도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라 무언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