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얽힌 추억 몇 가지

2010.01.05 13:36:00


새해 시무식 첫날, 기상 관측 사상 최대의 적설량이란다. 서울은 25.8cm, 수원은 19.5cm다. 눈발이 흩날리는 출근 길, 자가용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두고 버스를 이용하였다. 출근길 붐비던 차량이 한산하다. 버스가 정류장에 와서 서는데 한 1미터 정도는 미끄러진다. 위험하다. 출근대란, 교통대란이 걱정된다.

학교에 도착하니 기사님들의 제설작업이 한창이다. "교장선생님,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 눈을 치우자 마자 곧바로 쌓인다. 며칠 전 구입한 염화칼슘 10포대가 금방 동났다. 한 기사님이 말씀을 보탠다. 5년전 개교 당시 쌓아둔 재고 염화칼슘까지 다 썼다고. 그러면서 20포대 더 구입해야겠다고.

문득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40여년 전이다. 눈이 오면 처마에 고드름이 열린다. 그 당시는 눈이 오염이 되지 않아 그 고드름을 따서 먹었다. 여름철 얼음과자라 생각하면서 손이 시려운 줄도 모르고 깨물어 먹었다. 그뿐 아니다. 눈을 뭉쳐 먹었다. 하늘에서 펄펄 내리는 눈을 쫒아가며 입으로 받아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당시 얼마나 눈이 많이 왔는지 눈으로 굴을 팔 정도였다. 눈 위에 누우면 사람의 형체가 그대로 새겨진다. 그러면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면서 겨울을 즐겼다. 헝겊 운동화가 젖는 것은 물론이고 물이 스며들어 발이 꽁꽁 언다. 벌겋게 된다. 방수가 되지 않는 젖은 옷을 방바닥에 말리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모교에 근무하던 20여년 전. '부지런한 학교는 운동장에 눈이 쌓여 있지 않는다'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살아 움직이는 학교는 운동장의 눈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눈을 빨리 치우라'는 것이다. 지역교육청에서는 학교 관리자의 평가를 이것으로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학교는 눈 온 다음날 교직원이 자동 출근하여 제설작업에 나선다. 그러나 그 넓은 운동장의 눈을 다 치울 수 없다. 학생들의 도움을 받는다. 학교 인근에 사는 학생들도 제설도구, 대야, 양동이 등을 가져와 운동장의 눈을 치운다.

학생들은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든다. 운동장 곳곳에 눈사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눈덩이를 커다랗게 만들어 운동장 가장자리까지 굴린다. 머리에는 땀이 송송 흐른다. 속옷이 젖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다 보면 제설작업은 어느 정도 끝난다. 그게 애교심의 작은 표출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옛날 이야기다. 그 때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 잘 살진 못했어도 선생님을 존경하고 남을 생각하고 학교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기주의'라는 말조차 제대로 몰랐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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