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풍경 그대로 간직해 더 소중한 불대마을

2010.01.17 09:04:00

겨울이어서인지, 이곳이 오지여서인지 모르겠지만 불대마을은 휑하다는 느낌이 먼저 와 닿는다. 모든 산촌마을이 생태마을로 지정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면 더 활기와 희망이 넘칠 테지만, 마을의 규모가 작고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이 적어서 더 쓸쓸해 보인다.

어느 마을이라고 발전을 거부하겠는가? 하지만 오지의 산촌마을은 그런 여건을 갖추기가 힘들다. 그래서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데 도회지 사람들은 오히려 작아서 아름답고, 옛것이라 소중하다고 부러워한다.

무주의 불대마을도 그런 마을 중 하나다. 청정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무주에 반디랜드가 있다. 이곳을 지나 나제통문으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삼도봉 장터를 만난다. 장터에서 다리를 건너면 불대마을까지 오르막 산길이 이어진다.


마을로 가는 길에 김장용 배추들이 방치되고 있어 어렴풋이나마 산촌사람들의 어려운 생활을 짐작한다. 입구에서 반기는 큰 소나무와 느티나무 옆에 잘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향비와 산촌에서만 볼 수 있는 산림계장공적비가 서있다. 공적비의 내용대로 1952년 마을의 산림계원들이 인근 국유림 214정에 나무를 심었고, 그 조림목이 훗날 마을을 발전시켰다.

불대마을은 해발이 500m가 넘는 하늘아래 첫 동네이다. 민주지산(1242m)의 정상이 마을에서 2.9㎞ 거리이고, '충북, 전북, 경북' 3도의 경계에 있는 삼도봉도 가깝다. 마을은 보물을 숨겨놓은 듯 삼도봉에서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둘러싸여 아늑하고 정겹다. 마을에 들어서면 석축과 돌담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느낀다. 양지바른 곳에서 장작을 패고 있던 이종철(67) 이장과 마을어른들을 만났다. 


불대는 한문으로 '부처 불, 터 대'를 뜻하는 절터마을이다. 마을 서편 계곡의 불당골에 고려시대의 민암사 절터가 있다. 예전에는 불교의 유적인 석탑, 주춧돌, 기왓장 등이 마을에서 종종 발견되었다. 이 이장은 이런 유물들이 모두 골동품상들의 손에 들어갔다고 귀띔해준다.

마을사람들은 노령인구만 살고 있는 산골마을에서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얼마나 속이 타면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에게까지 푸념을 늘어놓는다. 정부가 산촌마을에 복지, 문화혜택을 지원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모두의 바람이다.

불대마을에서는 젊은이나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17가구 37명이 사는 이 마을의 최연소자도 회갑이 지났다. 마을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자신들의 안위보다 대대로 지켜온 고향과 농사일이 걱정이다.

자신들이 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 마지막 세대가 될 텐데 누가 산촌에 와서 살고, 누가 농사를 지을 거냐는 얘기다.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평생을 살아온 산촌살이를 힘겨워 한다. 그래도 산처럼 듬직한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 산촌사람들의 불편은 생각하지 않고 입에 발린 소리만 하는 도회지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마을 앞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면 지붕의 색깔이 알록달록 화려하다. 하지만 마을로 내려와 골목길을 돌아보면 낡은 집들의 갈라진 흙벽이 속살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숨결이 사라진 빈집들이 속 빈 우렁이를 닮아 안타깝다.

산골의 오지마을이 다 그러하듯 교통이 불편하다. 하루 네 번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타려면 정류장까지 1.7㎞를 걸어 나가야 한다. 노인들만 사는 마을이라 경운기가 주 교통수단이다. 장이 서는 설천면소재지까지 경운기로 30여분을 달려야 한다. 수량부족으로 마을 앞 계곡이 말라붙은 것도 걱정거리이다.




전우돈(75) 경노회장은 4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들이 북적거리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아무 곳이나 땅을 파고 곡식을 심으면 농사가 잘 되었고, 담배재배로 소득이 높았다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고추, 대학찰옥수수, 울타리콩을 재배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반딧불이 매실농가만 소득이 조금 높단다.

산비탈 다랭이 논밭에서 거둬들이는 호당소득이 600만원뿐이라 살림이 궁핍하다. 그래도 주눅 들지 않고 사는 이유가 있다. 이곳에는 도회지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달게 느껴지는 맑은 공기, 장수의 비결인 물맛, 사람 살기에 알맞은 기온, 회관에서 점심을 같이 해먹는 우애... 이렇게 좋은데 왜 도회지에 나가 아옹다옹 싸워가며 사느냐는 얘기다.

인생살이를 즐기면서 감사해 하는 사람들은 만족할 줄 안다. 불대마을 사람들은 '잘 살지는 못해도 먹고 살만큼은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집집마다 장작이 수북이 쌓여있고, 집안 곳곳에 마늘ㆍ씨래기 등 먹을 것들이 걸려있다. 하긴 세끼 먹으면서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사는데 무엇이 부족하랴.


불대마을의 저녁은 일찍 찾아든다. 마을에 땅거미가 길게 내려앉으면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가 지붕위로 피어오른다. 이런 모습도 옛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정겨운 풍경이다. 어쩌면 불대마을은 산촌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우리에게 더 소중하다.

[도로안내]
①대전통영고속도로 무주IC → IC삼거리 우회전 → 19번 국도 → 무주2교차로 우회전 → 30번 국도 → 무주반디랜드 → 설천면 삼도봉장터 → 소천교 → 불대마을
②경부고속도로 황간IC → IC삼거리 우회전 → 황간버스정류장 우회전 → 매곡면 → 상촌면 → 49번 지방도 → 용화면 → 무주반디랜드 → 삼도봉장터 → 불대마을

[주변 볼거리]
나제통문, 태권도공원전망대, 무주반디랜드, 민주지산, 무주구천동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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