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떡이 큰 만큼 내 떡도 크지 않을까

2010.03.27 10:59:00

새해 들어 주변에서 좋은 소식이 들린다. 나이가 비슷한 친구 몇 명이 교감 연수 대상자가 됐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이사 자리에 올랐다. 가까운 친척 아들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작년 실패했을 때는 이야기도 못 붙였는데 엊그제 모임에서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다. 직장에 또래 선생님이 상가 건물을 하나 샀다는 소문은 풍선을 타고 떠다녔다. 모 선생님의 아들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문은 작년 겨울에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부럽다. 모두 내가 이루고 싶은 성과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내 나이에 이르면 누구나 승진과 자식 걱정, 돈 버는 것에 마음을 둔다.
 
그런데 요즘 주변의 좋은 소식을 접하면서 갑자기 마음이 뒤틀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드니 내가 그 짝이 된 듯하다. 그들과 나를 저울에 올려놓고 있자니 자꾸만 처지는 신세다. 저들은 저렇게 잘 되는데 나는 왜 잘 되는 것이 없을까.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내 딴에 같이 달려왔지만 그들만 높은 자리에 섰다는 자괴감도 인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더니 그들의 떡만 크게 보이는 착시 현상인가.

엊그제도 친구 놈 집에 다녀왔다. 부부 동반 모임이라고 했다. 집들이를 한다고 오래 전부터 날짜를 주었다. 차를 타고 갔는데,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아내와 무거운 마음에 뒤척였다. 45평 아파트의 넓은 평수가 마음을 공허하게 했고, 고급 가구의 화려함이 마음을 헝클어뜨렸다.



친구 부부는 맞벌이로 고생도 많이 했다.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니 축하도 해 주고 함께 기뻐했다. 주변 사람들의 좋은 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성실하게 노력해온 삶의 결과이다. 내가 부러워하되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마음에는 자존심이 무성해지고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존심이 이제는 패배감으로 일어나 나를 억누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미움의 감정도 싹트고 있다.

힘든 것도 없는데 내가 힘들어졌다. 의욕도 없고 즐거운 일도 없다. 직장에서는 웃음을 잃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헌 옷 구겨지듯이 쓰러졌다. 그림자조차 꾸부정하게 드러누웠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휘적거리면서 법정 스님이 남긴 무소유 화두를 만났다. 물건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라고 한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무엇인가 갖는 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남의 떡 크기에 집작하는 것도 다른 바가 없다. 이것도 결국은 탐욕에 얽혀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니 인생이 참 힘들다.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웬만한 일은 그럭저럭 햇수가 지나면 이골이 나고 전문가가 되는데, 삶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어렵게 한다. 나이를 먹어도 가지고 싶은 것만 많고, 남의 것과 다른 나의 모습에 슬퍼한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버는 것,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도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보다 더 만족한 자기를 찾는 것이다. 가치 있는 자기를 찾는 것이 인생의 의미 있는 길이다. 남에게 휘말려 살아가는 짓은 불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 주변에는 남의 흉내만 내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삶은 일생에 단 한번이다. 한번뿐인 인생을 남에게 얽매여 산다면 너무 억울하고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가까이에 두고 멀리에서 생활의 보람과 삶의 가치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남의 떡이 큰 만큼 혹시 내 떡도 크지는 않을까. 친구 놈이 내 등에 대고 ‘난 네 와이프가 집에 노는 것이 더 부럽다’라고 한 것처럼, 내가 남의 떡을 부러워하듯 분명히 내 떡도 크게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비록 자기의 작은 행복이라도 그것이 삶의 아름다운 열매가 된다. 나도 열심히 살았다면 많이 성취하지 못했어도 값진 것이다. 삶의 행복은 자기가 심은 씨앗의 열매이다. 우리의 삶이 때때로 비틀거리고 만족하지 못할 때도 그 아픔을 치유하는 순간은 아름다운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픔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운명을 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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