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남은 교직생활, 어떻게 보낼까

2010.03.28 22:16:00

내년 8월이면 33년간의 교직생활을 끝내야 한다. 남은 1년 5개월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33년 동안 해온 교직생활을 생각하면 짧지만 지금 새로이 1년 5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떠난다거나 유학길에 오른다고 가정하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마음 먹기 따라서는 큰 업적을 쌓거나 대작을 한 편 완성할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직장 내에서 이제 제일 연장자가 되었다. 나 이외에 나를 더 잘 이해할 사람이 누구인가. 아무도 없다.

모든 선배가 갔던 길이고 모든 후배들이 가야 할 길이지만 내가 처한 시점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을 수는 없다. 정년까지 똑같은 시간이 남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는 태도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다른 사람 얘기를 참고는 하되 맹목적으로 받아드리지는 않는다. 나만의 목표를 갖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혹자는 이제 직장생활이 지루할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반대로 빨리 서둘러 퇴직 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의견에 귀는 기울이지만 나만의 행동강령을 갖고 나머지 기간 봉직할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데 왜 억지로 노년을 자처하고 말년을 염두에 두는가. 직장생활로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이 직장에서 퇴직하면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왜 소홀히 여겨 시간을 낭비하는가.

나는 청소년 시절 끊임없이 자아완성이라는 명제를 붙들고 고심했다. 일기를 쓰고 독서를 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시작한 종교생활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오면서 그런 노력이 많이 희석됐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유효하다. 스스로 나태하고 세상 속에 나를 띄워버릴 수는 없다.

철학과 문학과 종교에 심취하던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어느 하나에도 만족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그것의 일단을 아직도 놓지 못하고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아 온 것에 나는 감사한다. 돈과 권력에 눈이 먼 것이 아니고 명예에 내 본분을 망각한 것도 아니었다. 크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자신을 성찰하곤 했다.

그리고 아직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이 문학이다. 철학과 종교까지도 문학의 한 영역이 되어 내 인생의 남은 과제가 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문학을 해왔지만 객관적인 성과가 없으니 이젠 교직의 책임을 놓게 되면 객관적 성과까지 기대하며 좀 더 문학에 심취하겠다는 것이 나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교직에서 은퇴하여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우왕좌왕 하는 선배들의 얘기를 종종 듣는다. 혹자는 퇴직금을 아들 사업자금으로 내줬다가 그만 집마저 잃고 컨테이너에서 생활한다는 얘기가 들려오는가 하면, 퇴직한 어떤 교장선생님은 일당 3만원의 학교지킴이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듣는다. 직업의 귀천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입지가 좁아지고 남아도는 시간을 처리하기가 어렵다는 걸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작년에 퇴직한 선배 한 분은 관광안내원 시험을 봤다가 두 번이나 낙방했다며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쉽지 않다면서 푸념을 했다.

나라고 어떤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감에 넘쳐 호기를 부릴 까닭이 없다. 당장 내년에 퇴직하면 아침밥을 먹고 어디로 발걸음을 떼어놓아야 할지 고심해야 한다. 공연히 들녘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 몇 시간 헤매기도 하고 공원으로 발길을 옮겨 이리저리 상념에 젖어 걷기도 할 것이다. 이것도 당분간이지 10~20년 세월을 할 일 없는 시공에 덩그러니 놓인다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 이모작에 대해 한 저명한 학자의 조언을 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지만 매우 수긍하며 읽은 기억이다. 노년이 결코 잉여의 시간이 될 수 없다. 젊은 시절과 못지않은 귀중한 시간임이 분명하니 인생의 가장 풍요로운 시기로 가꾸어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디 맘만 먹는다고 될 것인가. 올 한 해가 다 지날 무렵쯤엔 또 구체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수필계의 중진 한 분은 학교에서 정년퇴직 한 다음, 전망 좋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왕성하게 작품을 쓰는가 하면 각종 문회센터 강사로 여전히 바쁘다. 나는 도저히 그 분의 왕성한 활동은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삶의 태도를 배울 수는 있다. 여유가 생긴다면 나도 오피스텔 하나 얻어서 창작에만 몰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동안 직장생활 하느라 피지 못한 재주가 드디어 만개하여 세상을 비출지도 모른다.

만개하여 세상을 비추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자기 성찰, 자아확인으로서의 작품 활동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10대부터의 숙원인 자아완성에 한 걸은 더 다가가고 그것이 나의 작품으로 구현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치 노후에 발견한 금맥을 지칠 줄 모르고 발굴하는 작업과 같을 것이다. 그리하여 노후에 얻은 자식 같은 작품이 효자노릇이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아직 막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나는 오로지 나의 스케줄에 따라 일상을 가꿔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고 나의 체험과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나는 생활패턴과 철학을 견지하며 그 소중한 시간을 맞을 것이다. 아마 그때 나의 화두는 외국 문화 탐방과 자연 속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다. 외국의 풍물을 수시로 익히며 우리나라 자연 속에 푹 파묻혀 열심히 나의 세계를 구현해 갈 것이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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