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대학생활 이상 없지?”

2010.04.07 09:02:00

토요일 오후, 올해 졸업한 한 제자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문자에서 제자는 대학 적응이 힘들다며 상담을 해 달라고 했다. 대학 생활을 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제자의 고민이 조금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으로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제자와의 시간을 정했다.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돌아오자 낯익은 얼굴이 책상 옆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제자였다. 지난 2월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난 제자이기에 그 반가움은 더욱 컸다. 머리 스타일만 조금 달라졌을 뿐 모습은 옛날 그대로였다. 그런데 얼굴은 고민을 많이 한 탓인지 조금 수척해져 보였다.

순간, 문득 학과선택 때문에 부모님과 많은 갈등을 겪었던 작년 2학기 때의 일이 떠올려졌다. 본인은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하기를 원했던 반면 부모님은 아이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간호과를 고집하여 적지 않은 승강이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수도권에 소재한 대학은 절대로 보낼 수 없다는 부모의 완강한 고집으로 그 아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결국 지방의 한 간호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사실 부모님은 내게 아이의 학과선택에 대해 여러 번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아이의 적성이 무엇보다 고려되어야 한다고 설득해도 부모님은 아이가 가고자 하는 학과(신문방송)가 전망이 없다며 취업이 잘되는 간호과를 고집했다. 그리고 자녀가 간호과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자녀가 간호과에 합격하더라도 적응을 잘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부모의 고집은 완강하였다.

입학을 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마침내 내가 염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인문계 학생이 자연계 학생도 어렵게 생각하는 간호과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무리인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제자를 간호과로부터 더욱 멀게 느끼게 한 것은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했던 생소한 전문용어였다.

제자는 자신의 적성에 맞지도 않는 학과를 부모님의 눈치 때문에 마지못해 다녔다며 지금 다니는 대학과 학과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고민 끝에 담임인 나를 찾아왔다며 좋은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가고 싶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였다.

매번 고3 담임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대학에 입학 후 적응을 못해 학교를 그만둔 제자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대학의 커리큘럼에 적응 못해 고민하는 아이들은 한 학기가 지나면 대부분 아무런 문제없이 학교에 잘 다니지만, 학과가 적성이 맞지 않은 아이들은 전과를 생각하거나 자퇴나 휴학을 선택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 아이의 경우, 자칫 상담을 잘못하면 부모로부터 원망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적응하려는 노력도 없이 학교를 그만두면 일 년이라는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고의 전환이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간호과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이나마 깨우쳐주는 것이었다.

우선 간호과를 졸업하고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제자를 그 아이에게 소개해 주기로 하였다. 선배로부터 간호과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야기(공부하는 방법, 학과의 특성, 졸업 후 진로 등)를 듣게 되면 혹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선배와 멘토링(Mentoring)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제자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한 번 더 도전해 보겠다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제자의 발걸음이 한층 더 가벼워 보여 다행이었다.

4월 초. 아이들이 대학생활을 한 지도 이제 한 달이 지났다. 대학생활이 생각보다 만족스럽지는 못하겠지만, 지금까지 대학입시를 위해 노력한 보람을 아이들이 느끼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금은 낯설고 힘든 대학생활이지만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제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번 주는 졸업한 제자들이 대학생활을 잘하는 지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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