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갱 외에 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 만경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김제에서 만경으로 이어지는 들녘은 소설가 조정래가 '아리랑'에서 묘사했듯 산은 다 어디로 가고 사방이 지평선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지평선축제를 열며 온통 노란 물결로 출렁이던 들녘에 보리들이 녹색세상을 만들었다.
논과 논이 들판을 만들고, 들판이 커지면 평야가 되는 평범한 이치도 이곳에 와서야 깨닫는다. 이맘때쯤 논에서 보리가 자라고 있는 모습도 요즘은 보기 어려운 풍경이라 새롭다. 보리와 지평선을 실컷 구경하며 서쪽으로 한참을 달리면 심포항 못미처에 낙조가 아름다운 망해사가 보물처럼 숨어있다.
망해사는 아래가 바로 바다라 이름에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절'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백제 때인 642년에 지은 사찰로 오랜 역사에 비해 규모가 작고 초라하다. 크기로 사찰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실망하기 쉽지만 제 몸을 녹여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석양이 있어 서해에서는 맑은 날보다 흐린 날, 큰 것보다 작은 것에 더 정이 느껴진다.
조선시대(1589년) 진묵대사가 세운 낙서전(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8호)은 ㄱ자의 팔작지붕 건물로 방과 부엌이 딸려 있는 법당 겸 요사이다. 낙서전 옆에 수령 400년이 넘는 팽나무(전북기념물 제114호)가 2그루 서있어 운치를 더한다. 작은 사찰과 오래된 팽나무, 눈앞의 바다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사찰 밖 작은 해우소에 들어가 앉으면 '앞문을 옆으로 밀어보세요! 근심은 덜으셨나요? 느리게 숨고르기를 세 번 하십시오. 그대 이대로 여기 떠나도 한점 부끄럽지 않은가? 흔적을 지우십시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써있는 대로 나무 창문을 옆으로 밀자 바다가 보인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면 해우소를 나오며 불필요한 흔적을 남겼나 뒤돌아봐야한다.
사찰 뒤편 솔숲으로 올라가면 진봉산 정상에 조망이 좋은 전망대가 있다. 망해사 앞으로 펼쳐진 서해바다, 진봉반도 끝의 심포항, 보리가 심겨진 들녘의 지평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낙서전과 전망대에서 낙조를 감상할 수 있어 해질녘에 찾아가는 것이 좋다.
망해사에서 나와 모롱이를 몇 굽이 돌면 진봉반도 끝머리의 심포항이다. 한때 돈을 건져내는 황금포구라 '돈머리'로 불렸다는데 삶의 터전인 갯벌이 새만금방조제 때문에 죽어가고, 출항을 기다리는 배들마저 지쳐 보인다. 그래도 한물간 어촌은 아니다. 횟집단지를 정비하는 등 활력을 되찾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심포는 생합으로 불리는 백합 등 조개류가 많이 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물고기들의 산란처라 꽃게, 대하 등 물고기들도 많이 잡혀 조개류와 꽃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아무 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회 대신 싱싱한 조개구이를 먹기로 했다. 맛을 보라며 껍데기를 뚝딱 따 싱싱한 속살을 입안에 넣어주는 큰언니수산(010-8627-6694)으로 정했다. 값에 비해 푸짐하게 나오고, 덤으로 준 것까지 먹고나니 배가 잔뜩 부르다.
삼한시대의 농경용 저수지 벽골제도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