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감사의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석가탄신일, 부부의 날이 꼬리를 문다. 짙은 녹음과 따뜻한 날씨가 기념일을 즐기기 좋게 하는데다 법정공휴일이 이틀이나 되니 1년 12달 중 제일 신나는 달이기도 하다.
오늘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33번째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다. 그런데 기쁨보다 ‘스승의 날을 또 맞이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앞선다. 어린이날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이나 어버이날 자식에게 대우받지 못하는 어버이들을 생각해보라. 기뻐해야 할 기념일이 슬프고 원망스러울 것이다.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스승의 날이 꼭 그 꼴이다.
이번에도 학부모나 아이들에게 ‘꽃이나 기념품을 절대 받지 않겠다’는 것을 알리며 낯이 뜨거웠다.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이지만 스승의 날 자체를 폄하시키는 말을 교사들이 왜 해마다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교사들이 도와줘야 할 아이들도 있다. 학부모들의 의식 수준도 예전과 다르다. 혹 기념품을 바라는 교사가 있다면 교원평가 등 교직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면 된다.
지난 어린이날, 학급의 아이들에게 칼라 연필세트와 지우개를 선물했다. 유난히 지우개를 빌려 쓰는 아이들이 많아 선택한 선물인데 나눠주자마자 한 아이가 칼로 잘라 작은 도막을 만든다. ‘스승의 날 꽃이나 기념품을 절대 받지 않겠다’는 말에 여자이이들 몇 명이 선생님도 선물을 했으니 자기들도 색종이로 꽃을 만들어 오겠다며 안달을 한다. 색종이 꽃은 받겠다는 말끝에 한 아이가 ‘색종이 사는데도 돈 드는데요’라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 물질적인 풍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래서 선물 하나 사주기도 어렵다. 가끔은 생각 없이 말하는 아이도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중함의 가치마저 값으로 따지는 세태를 만든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두 번이나 얘기했는데도 몇 명의 아이는 청매실차, 비타민, 책을 가지고 와 부모님이 이것은 괜찮다고 했다며 제발 받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이런 때 무작정 거절하면 보낸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돈이 지출된 물품은 일절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던 터라 곤혹스럽다.
해가 거듭될수록 스승의 날이 정보다 물질에 의해 퇴색되어가는 느낌이다.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 같은 메이저리그가 아니어도 괜찮다. 관중이 없는 마이너리그더라도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스승의 날이어야 한다. 들판이나 산에서 저절로 피어나는 야생화가 아름답듯 스승의 날도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 노래를 가르치며 1958년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병중이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존경하며 추모하는 뜻’으로 제정된 참뜻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