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깨어있는 의식이 중요합니다”

2010.05.23 20:36:00

며칠 전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교육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임에도 그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그에 의하면 길거리에서 명함을 나누어 주는데 10명 중 7명이 명함을 받지 않고 피해간다는 것이다. 명함을 받은 사람 중에서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은 어느 정당 소속이냐를 묻는다고 한다. 교육감과 교육의원은 정당과 무관하다고 답하니 “왜 그러냐?”고 되물어 선거운동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 한다.

언론 보도를 보니 1100만 도민의 교육을 책임질 경기교육감을 뽑는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론조사 결과 경기도지사 등 여타 선거 열기가 뜨거워지고 선거일이 임박해올수록 경기교육감 후보를 정하지 못한 비율이 되레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도시는 교육감 후보자의 부동층(浮動層)이 73% 정도로 나왔다고 보도한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이러할 진대 하물며 교육의원 선거의 무관심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교육의원이 어떤 직책인지,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유권자는 그들을 왜 내 손으로 뽑아야 하는지 못마땅한 것이다.

30년 이상을 교육에 몸담고 있는 필자도 경기도교육감 후보 네 명의 이름과 투표용지 게재 순서는 알아도 지역선거구에 출마하는 네 명의 교육의원 후보자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더욱이 도의원, 시의원 후보자는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사람 자체를 모르니 그가 내세우는 차별화된 공약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모른다.

얼마 전 수도권 전철에서 교육계에서 정년 퇴직한 지인을 뵌 일이 있다. 교육자 출신이라 이번 선거에 대해 한 말씀하신다. “교육감 후보가 교육정책, 교육방법, 교육여건 개선 등 교육본질은 젖혀두고 교육이 아닌 ‘무상급식’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다. 국민들에게는 ‘무상급식’이 먹혀들어가고 있다. 작년 교육감 선거에서 그 공약이 효험을 보아 새로운 진보교육감을 탄생시켰다. 그 영향을 받아 전국 지방자치 후보들이 ‘무상급식’을 주메뉴로 써먹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무상급식의 찬성 반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상급식’이라는 공약이 유권자에게 먹혀들어가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필자는 리포터로서 중앙선관위가 주최한 ‘선거 아카데미’에 참가하여 강의를 주의 깊게 들은 일이 있다. 출연 강사는 ‘선거에 있어 이슈를 선점한 자가 이긴다’고 강조한다. 선거란 이슈 게임이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슈의 찬반에 따라 60~70% 정도 당락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구체적 사례로 지난 대선에서 ‘수도이전론’과 ‘대운하’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국민들은 선거 이슈가 옳고 그른 것보다 이슈에 주목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면 복잡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을 이긴다고 강의한다. 틀려도 강한 것이, 옳지만 약한 것을 이긴다고 강조한다. 이 말을 들으니 선거가 무섭기까지 하다. 작년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가 먹혀 들어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까? 누가 당선이 되어야만 '나에게 이익이 있을까'를 생각한다. 지연, 학연, 혈연을 따진다. 눈 앞의 이기주의에 눈이 먼다. 내 자식의 미래와 국가의 앞날은 생각하지 않는다. 목전의 이익 추구에 급급하다. 이런 유권자에게는 포퓰리즘이 먹혀들어간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정치인들은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을 위한다는 생색을 내며 당선전략을 구사하려 한다. 그들이 내세운 헤픈 살림살이는 사실 독(毒)이 되어 국민과 국가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선심성 공약은 국가 망조의 지름길이다.

“與마저 ‘票’퓰리즘” 근래 접한 신문기사 1면 제목이다. 야당에서 표를 얻고자 공약을 남발하자 여당마저 표를 잃을까 조바심에 내세운 선심성 공약을 꼬집은 것이다. 깨어 있는 유권자는 포퓰리즘 공약을 구별해 낼 줄 안다. 득표를 위한 사탕 발림 공약을 가려낸다. 지혜로운 국민은 달콤한 공약을 외면하고 표로써 응징한다. 유권자의 깨어있는 의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국민이 뽑은 지도자는 유권자의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 수준 높은 국민은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혜안을 갖고 있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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