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노인대학에서 고개 숙인 이유는?

2010.06.02 22:42:00


필자는 지난 주 학구 내에 있는 진흥교회가 운영하는 노인대학(학장 황의일) 강단에 섰다. 특강 요청을 받고 가장 고민한 것은 주제다. 어르신들 앞에서 일장 훈시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삶의 지혜를 알려 드릴 수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작년 특강에서는 교단에 불어닥친 회오리 바람, 즉 교단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 했으나 수강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는 이의 수준에는 맞으나 듣는이의 요구나 필요성 면에서는 잘못 선정된 주제가 아닐까.

이번엔 어떻게 할까? 주어진 시간은 30분 정도다. 수준을 너무 높게 잡으면 안 되고. 그 결과 노인들의 질문을 받기로 했다. 질문하시는 분께 드리려고 '비타민 C' 작은 선물도 10개 준비했다. 그 대신 질문의 범위는 학교, 교육, 서호중학교, 필자로 국한했다.

어떤 질문이 나올까? 첫번째 할머니다. "교장 선생님은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어떻게 일찍 교장이 되었나요?" 필자에 관한 질문이니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겠다.

"예,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선생님을 부러워해 자식들이 교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선생님의 좋은 점을 들어가며 자식들이 선생님이 되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셨죠. 그래서 6남매 중 4명이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사위와 며느리까지 합하면 집안에 7명이 선생님입니다. 지금 관내 교장들 중에서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지만 올해 교직경력 34년째입니다. 다만 장학사 경력이 4년 반 정도 있어 다른 사람보다 빨리 승진한 편입니다."

그 다음 질문은 교장으로서 부끄러운 내용이었다. 중학생들이 동네 가게에서 군것질을 하고 그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니 학교에서 지도해 달라는 내용이다. 또 한 분은 남녀 학생들이 동네에서 몰려다니며 담배를 피우는데 노인들이 지도를 하여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학교에서 새고, 학교에서 새는 바가지 동네에서도 새는 법이다.

"예,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요즘의 학교 실정을 잠깐 말씀드립니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면 선생님께 미안해 하기는커녕 도리어 화를 내며 대드는 학생이 있습니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학생은 학교에서 지도가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만치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이지요."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들이 동네의 취약지구를 순회하며 지도하겠습니다. 어르신들도 흡연 학생들을 보면 그냥 두지 마시고 학교에 연락을 주시거나 지도해 주십시오."


학생들의 무질서한 생활, 기본이 제대로 안 된 행동들이 노인들에게 지적된 것이다. 가정교육에도 문제가 있지만 학교교육의 부실이 한 원인이다. 학생생활지도는 학교, 학부모,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가정교육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면 학교에서 더 이상 교육시킬 수 없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인내심으로 사랑, 애정을 갖고 지도하면 학교교육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이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더 이상 질문을 받다간 교장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다. 학생들의 학생답지 못한 행동이 교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제 마무리 시간이다. 준비해 간 게임으로 수건 웃음, 교차 박수 엉터리 지휘 등을 하였다. 동작을 따라하는 평균 80세 이상인 노인들의 표정이 무척 밝다.

"여러분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식, 손주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지적하여 바로 잡아 주십시오. 그냥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면 바로 잡히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손주 교육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학교에 대한 지적사항, 선생님들께 전달하여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하겠습니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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