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40분부터 “오늘은 27번째 명심보감을 통한 인성교육시간입니다. 명심보감과 인성노트를 펼치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교실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명심보감과 노트를 펼쳐놓고 설명을 하시는 담당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명심보감 21쪽을 폈다. 정기편 다섯 번째 문장이었다. 문장이 꽤 길었다. 그래서 설명이 길어졌다. 다행히 문장이 어렵지 않아 학생들은 부담이 적을 것 같았다.
내용을 보면 이렇다. “강절소선생이 말하였다. 남의 비방을 들어도 성내지 말며, 남의 좋은 칭찬을 들어도 기뻐하지 말며, 남의 악행을 들어도 이에 동조하지 말며, 남의 선행을 듣거든 나아가 어울리고 또 따라서 기뻐할지니라.
시(詩)에 이렇게 말하였다. 선한 사람 보기를 즐겨하며 선한 일 듣기를 즐겨하며 선한 말 이르기를 즐겨하며 선한 뜻 행하기를 즐겨하고, 남의 악한 점을 듣거든 가시를 등에 진 것 같이 여기며, 남의 선한 점을 듣거든 난초를 찬 것같이 여기라”
우리 학생들과 함께 이 문장을 붙들고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해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해 있다고 해서 둘 다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선을 택하고 악을 버릴 것인가? 또 아니면 그 반대로 할 것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선을 택하기보다 악을 택하기를 좋아한다. 선보다 악이 행하기가 쉽고 우선 보기에는 달콤하기 때문이다. 선은 좋은 것이고 악은 좋지 않은 것인 줄 알면서도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고 하지 않고 때에 따라 선을 택하기도 하고 둘을 선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을 선택하기도 한다.
분명히 좋은 것은 선인데도 말이다. 선한 것을 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고 도움이 되지 못하고 우선 행하기가 어려우면 선을 택하려고 하지 않는다. 선을 택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악한 것이 나를 유혹해도 그것은 과감히 물리쳐야 한다. 겉으로는 선을 행하고 속으로는 악을 행하는 이중적인 생활도 과감히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식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선과 악은 함께 섞일 수 없다. 물과 기름의 관계이다. 그러기에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 선이냐, 악이냐를 두고 분명 색깔을 내야 한다. 나는 남을 비방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남을 칭찬하는 사람인가? 나는 선행을 행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악을 저지르는 사람인가?
나는 선한 사람인가? 아니면 악한 사람인가? 나는 선한 일 듣기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악한 일 듣는 것을 좋아하는가? 나는 선한 말 하기를 즐겨하는가? 아니면 악한 말 하기를 즐겨하는가? 나는 선한 뜻 행하기를 즐겨하는가? 나는 악한 뜻 행하기를 즐겨하는가?
오늘이 선과 악,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날이다. 분명 선을 선택하리라. 선을 선택하는 길이 바른 길이고, 난초와 같은 향기나는 길이다. 선을 선택하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길이다. 반면 악을 선택하는 것은 가시밭길이다. 바르지 않은 길이다. 가시를 등에 진 것 같은 고통의 길이다.
현재 나는 어느 위치에 있는가? 선? 아니면 악? 아니면 둘 다? 어떻게 알 수 있나? 남의 비방을 말하고 있나? 남의 악행을 듣고도 동조하고 있나? 남의 악한 점 듣고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나? 그러면 악에 치우쳐 있음이다. 남의 좋은 점을 칭찬하고 있나? 악을 미워하고 있나? 남의 선한 일 들으면 즐겁고 유쾌한가? 남의 착한 점 들으면 아름다운 향기를 느끼듯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 나의 선에 치우쳐 있다고 보면 된다.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몸부림이 필요하다.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신이 되도록 매일 결단하고 나타내고 행하는 삶이 바람직하다. 선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행복한 길이다. 여유있는 길이다. 노래가 있는 길이다. 기쁨이 있는 길이다. 이 길 계속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