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미혼부 보고하라고?

2010.07.19 09:19:00

며칠전 공문을 받아보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국회의원요구자료로 학생 중 미혼모 미혼부 현황을 보고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미혼모와 미혼부를 어떻게 학적처리 했는지도 함께 보고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일 해당사항이 없는 학교는 '해당없음'으로 해서 보고하라고 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해당없음'으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까지 학교에서 미혼모, 미혼부가 있다는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그런 사실이 알려진 바가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담당부서에 문의했지만 그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자료도 없고 그런 것을 조사한 적도 없다고 했다. 조사한 적이 없다고 대답은 하지만 실제로는 조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이런 사실이 있는지 조사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학적처리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국회의원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자료를 요구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학적처리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현재 상황을 좀더 정확히 파악하고자 했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겠다. 학적처리를 어떻게 했느냐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어떤 학교에서 이런 것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겠는가.

더구나 우리 학교는 중학교다. 중학교에까지 이런 공문을 보내서 조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고등학교라도 이런 공문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과 사생활을 보호해야 할 현재의 시대에서 인권과 사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사를 한다는 것이 타당한지 확실히 따져보아야 한다. 국회의원이 요구하면 그 요구에 응해야 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로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이런 공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교사들은 혹시 초등학교에까지 이런 공문을 보낸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하는 이야기를 했다. 우려를 했지만 공문의 수신처를 살펴보니 초등학교에도 같은 공문이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청소년들의 예민한 감정을 이런 식으로 자극하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학생들에게 이런 공문에 대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학교에 따라서는 담임교사를 통해 조사를 했을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지만 수많은 학교들 중에서 조사를 한 학교가 있다면 이는 분명한 사생활침해가 될 수 있다. 조사를 한다고 그 결과가 나올리 만무하다.

국회의원들이 청소년들을 걱정하고 대책을 세우려는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조사하는 방법밖에 없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한다. 대책을 세우는데 이런 방법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자료를 요구할 것과 요구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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