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 두려운 여교사들’ 대안은

2010.07.20 11:39:00

7월 13일 한국일보에 ‘출근이 두려운 여교사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 내용은 여교사들이 통제 불능의 교실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과거 중학생, 고등학생이 문제였지만, 최근에는 문제의 중심에 초등 6학년~중학 2학년에 해당하는 ‘1315 세대’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집단 따돌림과 또래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폭력 행위, 심지어 교사 폭행까지 일삼고 있다는 보도다.

기사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교사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상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문제 학생들이 많은 6학년 교실에 들어가는 데 대한 걱정 탓으로 출근조차 하기 싫다는 호소도 했다는 보도다.

이 같은 분위기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적 행위도 무시하고, 심지어 교사 폭행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학생·학부모의 부당행위로 인한 교권침해 사례는 2007년 79건, 2008년 92건, 2009년 108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기사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대부분의 가정에 자녀가 한둘뿐인 상황에서 예전보다 소홀해진 가정교육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초등학교 때부터 인성교육을 등한시 한 채 입시 위주로 교육을 하는 것도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피상적인 접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아이들만 탓하고 학교의 내적 요인으로만 몰고 갈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일탈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학교 현장을 보자. 요즘 좁은 교실에는 과거와 체격이 다른 아이들이 40명이 넘게 있다. 화장실도 먼저 가야하고 급식 순서도 지루하게 기다려야 한다. 매사에 남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좁은 교실에서 지나다보면 툭툭 부딪치는 것은 다반사다. 왕따와 폭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물리적 환경이다.

학교에 가면 좁은 교실 외에는 쉬고 이야기할 장소도 없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데 교실은 고작 멀티비전 하나가 전부다. 사각형 교실 건물에 황량한 운동장은 60년대와 같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없다. 매일 드나드는 교문부터 차가운 쇳덩어리 이미지를 벗고 따뜻한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켜야 한다. 중앙 현관에 학교 교육 목표와 상패와 상장으로 전시할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즐기는 갤러리 전시장으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설이 뒷받침 되어야 아이들이 서로 눈을 맞추고 정서를 나눈다. 학교가 아름다워야 아이들도 예쁜 마음이 싹튼다.

마지막으로 학교 교칙도 엄해야 한다. 최근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과 또래에 대한 폭력 행위, 교사 폭행 등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마땅한 통제 장치가 없고, 또 일탈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는 의무교육 과정으로 변화면서 학교에서 징계가 무뎌졌다. 학교에 있어서는 안 될 아이들을 내쫓을 방법이 없다. 교사를 폭행한 학생을 학교가 아니면 갈 곳이 없다고 무작정 품안에 안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무작정 학생을 끌어안고 있으면 제2의 제3의 폭력 학생을 양산한다. 벌을 받지 않다보니 학생들은 위기의식이 없다. 학생이라도 규칙을 어기면 엄한 벌을 받아야 한다. 벌은 해당 학생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온정주의에 빠져 무턱대고 용서만 해준다면 폭력적인 학생은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다. 엄격한 교칙을 적용하고, 그에 따른 매뉴얼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길을 열어준다면 학생 개인에는 물론 학교 문화도 개선이 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사회 변화가 낳은 일시적 현상이라며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을 방치하면 학교 현장의 일탈 행위는 끝없이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실제로 지금의 현상은 몇 년 전 학교 붕괴, 교실 붕괴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한다. 필자가 보건대 아이들의 폭력은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다.

무턱대고 사회 변화의 현상으로 몰고 갈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 학교 교육이 문제면, 교육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고, 물리적 환경이 문제이면 환경을 개선해 주어야 한다.

많이 가르치고 학력을 높인다고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또래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더불어 사는 생활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교육적 요소다. 친구들과 다툼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해 가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 존중을 배울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 여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올바르게 크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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