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2010.07.27 09:37:00

1985년 첫 시집을 발간했으니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해도 나는 25년 동안 글쓰기 작업을 해왔다. 첫 시집을 내기 전 몇 해 동안의 습작기까지 감안한다면 근 30여 년 글쓰기 작업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변방의 아마추어 시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토록 좋은 시 쓰기를 갈망하면서도 여태껏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걸까?

오늘은 그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항상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 언젠가는 독자들로부터 인정받는 시인이 되겠지 하고 기대는 했지만 기대는 그냥 기대로 끝나고 이제 벌써 노년의 초입에 진입해 있다. 이제 어떻게든 꿈을 다시 조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꿈을 다시 조율하기 전에 문인으로서의 나의 지난 삶을 먼저 돌아본다.

첫째 투철한 작가정신이 부족했다. 작가가 되려면 먼저 작가로서의 소양을 쌓아야 한다. 많은 독서를 통하여 문단의 흐름을 파악하고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경향을 분석하는 등 문학에 대한 폭 넓은 소양을 갖춰야 한다. 탁월한 작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선행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여건 상 등단의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등단매체를 중심으로 한 문단의 파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애초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기는 틀린 여건 아닌가. 문단행사에 대한 관심 내지는 참여도가 전무하다시피 하고 등단지도 문단에선 거의 도외시하는 매체이니 아직 본격문학의 문지방도 넘지 못한 것이다. 제사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을 쏟는 태도로 일관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문단에서 아무 지명도도 없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둘째 작가가 되기 위한 피를 깎는 노력이 없었다. 하룻밤 몇 편의 작품을 쓸 만큼 노력했다 해도 그것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문학 창작의 원리에 입각하지 않고 막연한 감정이나 극히 제한적인 사적인 관심사의 표출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어떤 성과도 기대할 수 없는 진부하고 고루한 문학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문학창작의 기본원리 혹은 문학 감상의 기본 원칙을 익혀 문학에 대한 안목을 길러야 했다. 가끔 베스트셀러 작품집이나 사서 읽는 아마추어 독자 수준으로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내가 오랜 문학 활동에도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변명을 갖다 붙이더라도 정당성이 확보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내 작품에 나 혼자 도취되어 시인의 명패를 달고 다니며 아마추어 시인의 길을 가고 있다. 여전히 자신의 시세계를 확신하지 못하고 남의 시를 보면서 모방할 궁리에 몰두하는 문학 소년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꼴이다. 어떤 시인은 끊임없이 배를 생산해내고 어떤 시인은 사과를 생산해내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배꽃이나 피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어떤 시인은 계속 호두알 같은 시를 거두어들이고 고구마 같이 탐스런 농작물을 캐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남의 농사를 기웃거리며 어떤 농사를 지을까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꼴이다. 이래가지고도 내가 시인이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가. 차라리 교사로 아이들 교육에 매진하며 스스로 시인의 꼬리표를 떼어내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래 절필하고 신바이쳐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획득한 신동문 시인처럼 문단 밖으로 나앉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고 더 좋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시인인지 시의 독자인지, 아마추어 시인인지 여전히 문학 소년인지 모를 어정쩡한 상황을 깨끗이 청산하고 이름 없는 소시민으로 생업에만 충실한 것이 한결 더 떳떳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문단 밖으로 떠나기로 단단히 벼르고 별러 수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문학이 그리워 시를 잊을 수 없어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다면 그때는 새로운 각오로 문학을 품에 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하고 무성의하게 대하던 태도를 일신하여 열렬한 사랑을 다시 불태워 감자를 수확해내던지 알알이 여문 포도송이를 따내던지 어떤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 빈 쭉정이 같은 문학을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시는 곧 그 사람의 삶이다. 문학과 삶이 동떨어진 별개일 수가 없다. 문학이 곧 삶이요 삶이 곧 문학이 되는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수확철이 되어 바람에 펄펄 날리는 빈 쭉정이가 아니라 밤톨이 되었던 도토리가 되었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유행이나 쫒으려 하지 말고 훌륭한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 안목을 기르자. 그리고 남의 흉내를 내지 말고 우직하게 나의 문학세계를 구축해 나가자. 반드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천상천하유아독존 당신을 빼닮은 시가 탄생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시인이 되는 것 아닌가.

사과는 영양가도 있어야하지만 맛도 있어야 한다고 폴 발레리가 말했던가. 맛과 영양분을 골고루 갖춘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신상품을 독자들에게 내놓는다면 더 이상의 회의와 방황은 끝나게 될 것이다. 오직 문학으로 일가를 이루겠다는 새로운 희망이 다시 용솟음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수확한 밤, 대추, 사과, 배 등 오곡백과 풍성하게 쌓아놓고 한바탕 축제라도 벌이자.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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