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회상하는 50년 교단일기⑪

2010.08.16 09:13:00

마음먹기 달렸지

“야 ! 정말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 만이냐? 그래, 그 동안 잘 들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인사를 나누느라고 부산했고, 더구나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느라고 소란스러웠습니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이 넘은 중년 아저씨 아줌마들이 모여서 “야 이 자식아!” “뭐 임아? 너 그 동안 많이 컸구나?” “나이가 몇 인데 이제껏 크는 타령이냐? 이제 늙어 가는 마당에…” 이런 소란이 얼마동안 계속 되면서 흰 머릿카락이 희끗희끗한 어른들이 금세 어린아이가 되어서 야단법석입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니까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가 버린 듯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은 제각기 너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 모임의 책임졌던 이봉룡 박사가 아이들에게 잠시 조용히 하라면서 “오늘 여기 귀한 손님을 모셨다. 너희들 기억할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계시는 분은 우리가 2학년 때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김영화 선생님이시다. 처음 발령이 나셔서 얼마나 우리를 열심히 가르쳐 주셨는지 기억나지?” “ 와아 ! 선생님! 반갑습니다.”

한바탕 인사가 있고 나자 아이들은 선생님을 가운데 모시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두들 '저는 누구입니다'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 선생님은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그 옛날의 기억을 살려 불러주기도 하고 기억이 잘 안 나는 아이들에게는 묻기도 하면서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잠시 후 늦게 도착하는 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잠시 수런거리더니 이 박사의 지시대로 쉿! 소리를 내면서 입에 검지를 세워대는 동작으로 행동을 통일하였습니다.

“야! 내가 너무 늦었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말이야.”
차례차례 인사를 나누던 그 아이는 선생님의 앞에 이르러서 손을 덥썩 잡으면서 “ 야 ! 너는 누구냐 ? 하두 오랜만에 만나서 누군지 잘 모르겠다.”

이 말은 자리에 앉은 모든 아이들에게 폭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배꼽을 잡고 뒹굴기도 하고, 여자아이들은 입을 가리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열어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늦게 와서 선생님께 말을 걸었던 아이는 그만 어이가 없어서 자리를 휘둘러보면서 “왜 그래에? 내가 뭐 잘 못했냐 ?”하며 소리를 꽥질렀습니다. 이 소리는 더욱 모든 사람들의 웃음을 부채질을 했습니다.

“야 ! 너 얼른 꿇어 엎드려서 인사드려 임마! 너 누구신지 모르겠어?”

“뭐 ? 누구신데?”

“야, 임마. 우리 2학년 때 담임선생님 김영화 선생님이셔. 얼른 인사드려. 너 그럴 줄 알고 알아 뵙는지 보려고 안 알려 준거야.”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하두 오랜만이라 몰라 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아이는 정말 죄송해서 못 배기겠다는 듯 얼굴이 빨갛게 되어 가지고 꿇어앉아서 큰절을 올렸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선생님 정말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찬찬히 뵈니까 이제야 기억이 나는데요. 선생님 그런데 흰머리는 제가 더 많은데요?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도 안 변하셨어요”하며 진심으로 선생님께 인사를 다시 드렸습니다. 
“우리가 35년 만에 다시 만났지?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너희들도 이제는 늙어 가고 있구나. 이렇게 다들 건강하고 자기 몫을 다해주니 정말 고맙다. 내가 아직 이것밖에 늙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선생님은 63명의 친구들 중에서 무려 20명이나 이름을 외우시며 차근차근 어린 시절의 이야기며 특징을 차례로 말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영록이 그 아이는 황산 마을에 살았는데, 아버지께서 상이군인 이셨지. 몹시 몸이 약해서 늘 아프기도 하고.”
“지금은 여수에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돈을 꽤나 벌었다고 합니다.”
“음, 그래 잘 됐구나. 몸이 약해서 걱정이었는데. 참, 윤영이는 그때 서울로 이사를 해버려서 그 뒤로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지 ?”
“2학년 때 반장을 했던 윤영이 말입니까? 선생님 정말 그 아이들 얼굴도 기억하십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시니까 알지 우리는 그 아이 이름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면 서로 안다거니 모르겠다거니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혹시 김종호라는 아이는 여기 와있지 않니? 눈이 크고 머리통이 좀 커서 장군감이라고 하기도 했었는데.”
“선생님, 그게 정말입니까? 선생님이 장군감이라고 하셨습니까?”
“으음, 그 얘에게 특별한 기억이 하나 있지. 그 아이 이름이 김종호인데 그게 한자로 쓰다보면 쇠 금(金)자가 세 글자에 모두 들어있었지.”
선생님은 종이에 '金鐘鎬'라고 한자를 쓰시면서
“이렇게 말야. 그런데 2학년 여름부터 종호가 자주 아프고 가끔은 결석을 하기도 하였지 않니, 그래서 한 번은 내가 종호를 데리고 집엘 간 적이 있었지. 그랬더니 종호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종호는 이름을 바꿔 줘야 한 대요. 이름이 너무 세어서 그렇게 자꾸 아프다고 그래요’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나이가 불과 스물 두 살이었지. 그런데 건방지게 내가 말씀을 드렸단다. '무슨 말씀 이셔요. 종호라는 이름이 뭐가 나빠서요. 종호가 생긴 것도 남자답게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얼굴도 저만하면 그까짓 이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쇠 금(金) 자가 셋씩이나 들었으니 군인으로 가면 많은 군인들을 호령하고 별을 셋쯤 다는 장군이 될 텐데요 뭐가 문제입니까? 이름 같은 것은 걱정도 하시지 마세요'하고 건방진 이야기를 했었거든. 사실 내가 뭘 알아서가 아니라 나는 그때 운명론 같은 것을 믿을 나이가 아니었지 않니. 그래서 내가 자신 있게 떠들기는 했지만 내가 이름에 대해서 뭘 아는 것은 아니었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신영식이가 “선생님 염려 마십시오. 잠시만 있으면 그 종호가 여기 곧 올 것입니다. 잠시 전에 의정부에서 출발한다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선생님의 예언대로 군인이 되어서 아직 장군은 안 되었지만 중령입니다”하고 보고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너무 놀란 표정을 지으시며 “뭐라고 ? 중령? 그게 정말이냐 ? 정말 군인이 되었어?”하시면서 너무나도 엄청나게 자신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는 게 신기하기만 한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리 아이들이 그렇게 말을 해도 정말 종호가 나타나서 얼굴을 보기까지는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시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음식이 나오고 술잔이 거나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술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군인이 아이들의 앞에 와서는 "선생님, 김종홉니다"하고서는 거수경례를 척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아이들은 지금까지 선생님께 들었던 말씀이 생각이 나서 모두 박수를 치면서 “김종호 장군 축하합니다”하고 합창을 하였습니다.

“야 ! 너희들 놀리는 거니? 내가 무슨 장군이냐? 아직 별을 못 달았다고 놀리니? 그렇지만 난 별을 달기가 쉽지 않아. 아마 어려울 거야”하면서 선생님의 곁으로 다가 갑니다.

선생님이 종호의 손을 덥썩 잡으시면서 “김종호. 네가 정말 군인이 되었구나. 장군이 아니더라도 중령이면 대대장인가? 그럴 거 아니냐. 그렇지?” “넷, 대대장 급입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네 이야기를 하셨거든. 2학년 때 네가 아파서 집에 가셔서 네 이름을 고치지 말고 군인이 되면 장군이 될 이름이라고 하셨다고 말야.”

회장을 맡은 영식이가 설명을 하자 종호는 다시 머리를 숙이면서 “선생님, 어머니께서 늘 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마 그래서 군인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진정으로 고개를 숙여서 다시 인사를 드립니다.




“아냐. 난 정말이지 그 때 내가 그렇게 무슨 예언을 할 만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운명론을 믿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름이 나쁘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 그래서 그렇다면 그 이름이 빛날 수 있는 곳이 있지 않느냐고 말씀을 드렸던 것뿐이었어. 그런데 이렇게 내 말이 적중했다는 게 너무 이상하고 오히려 내가 너에게 감사해야겠다. 만약에 내 말이 영 형편없는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면 얼마나 너에게 미안했겠니? 그런데 이렇게 안심을 해도 좋게 되었으니 정말 감사하다.”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이름이 나쁘고 좋고 이름이 운명을 좌우 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아니야. 난 그것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것은 운명론을 믿을 수 없다. 자기의 운명은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달렸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거든. 그래서 감히 남의 앞날을 점칠 수는 없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만 하면 그까짓 이름 때문에 무엇이 되고 못 되는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했던 것뿐이야.”
“그렇지만 그 말씀 덕분에 저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고, 또 이렇게 정말 군인이 되어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의 예언이 적중하신 것입니다.”
종호는 다시 선생님의 손을 잡고 어루만집니다.
“그래 사실은 누가 무엇을 하고 못하고는 자기 자신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겠니? 무슨 일을 하면서 ‘나는 반드시 이 일에 성공을 할 것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을 하면 반드시 성공을 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아무래도 이것이 어렵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일은 우선 정성이 들어가지 않고 전력을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지. 그래서 난 늘 '세상만사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무슨 일이든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안 될 일이 있겠니? 오죽하면 나는 가훈도 '운명개척'(運命開拓)으로 정하고 살겠니?”

선생님의 말씀에 35년 전의 그 날로 되돌아 간 듯 모두들 입을 모아서 “예, 선생님. 맞습니다”하고 우렁차게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 난 너희들에게 희망을 주고 무슨 일이나 자신이 노력을 하기에 따라 성공을 하느냐 못 하느냐가 달렸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거야. 이제라도 우리 마음만 잘 먹으면 성공은 물론 어려움도 반드시 이겨 낼 수 있는 것 아니겠니?”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회장이 잔을 높이 들면서 “우리 모두의 신념을 다지고 굳은 결심으로 성공을 위해 열심히!”하면서 건배를 외쳤습니다.

“열심히 !”
모두가 정말 굳은 결심을 한 듯 환한 얼굴로 술잔을 치켜듭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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