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회상하는 50년 교단일기⑫

2010.08.19 15:08:00

운명을 바꿔라

“야, 왕두 오늘도 숙제를 안 해 왔어?”
“아니요. 이렇게 해왔는데요?”
“뭐? 왕두가 숙제를 해왔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게 아냐?”
“아니에요. 해는 동쪽에서 뜰 거예요.”
“아니 뭐라구? 왕두가 오늘은 웬일이지?”
“선생님, 어제요. 왕두네집에 사주쟁이가 왔는데요, 왕두에게 깡패가 될 거라고 했데요. 그래서요. 왕두가 깡패가 되어서 감옥에 가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서 오늘부터는 숙제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기로 했대요.”

앵무새처럼 말을 잘하는 영순이가 달랑 들고 나서서 얘기를 하였습니다. 왕두는 빙그레 웃으면서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선생님은 빙긋이 웃어 주면서 왕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우리 왕두가 정말 깡패가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도와주자. 지금까지와 달리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하는 왕두에게 잘 생각했다는 칭찬과 함께, 더 열심히 하도록 도와주겠다는 박수를 한번 쳐주자.”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모두 손뼉에 불이 나도록 힘껏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우리 학급의 아이들은 모두들 이 말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랐습니다.

백왕두 !
멀리 남쪽 바닷가 물결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시골구석에 있는 이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세고 아이들을 잘 괴롭히는 사람이 바로 이 백왕두입니다. 이제 겨우 5학년이지만 어찌나 덩치가 큰지 선생님만큼이나 커다란 덩치에 얼굴에는 흉측하리 만치 보기 싫은 흉터까지 자리 잡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질리는 얼굴입니다. 거기다가 힘이 어찌나 센지 한꺼번에 두 명씩이 덤벼들어도 끄떡도 하지 않을 만큼 기운이 장사였습니다. 아이들이 즐겨 노는 진 빼앗기 놀이라도 할라치면 왕두네 편이 되면 이길 수 있지만 다른 편은 번번이 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니 아이들은 더구나 겁을 집어먹어서 함부로 덤벼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왕두에게 기가 죽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공부를 하기가 싫어서 항상 숙제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학교에 오기 때문에, 공부시간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보면 그 시험지를 받는 것이 가장 싫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이 때는 어김없이 선생님의 꾸지람을 듣고 군밤이라도 한 대 얻어맞아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날마다 숙제는 어찌 그리도 하루도 빠뜨리지 않으시는 지, 날마다 왕두가 벌을 서거나 손바닥을 맞는 것도 일입니다. 숙제를 하기가 싫어서 안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왕두가 그동안 공부라고는 하기가 싫어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공부를 하려고 해도 도무지 뭐가 뭔지를 알아야 할 게 아닙니까? 이런 왕두에게 신나는 것은 운동장에서 하는 체육시간과 아이들과 어울려서 노는 놀이 시간이었습니다.

“야 ! 너희들 한꺼번에 몽땅 다 덤벼 봐!”하고 자신에 차서 콧소리를 내어도 아이들이 덤벼 보았자 이겨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왕두가 항상 말썽꾸러기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이 필요한 학교 일을 하거나 꽃밭을 가꾸는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몇 몫씩을 해치웠습니다. 선생님이 하라고 하지 않더라도 다른 아이들이 못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금방 덤벼들어서 일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에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정말로 나쁜 아이는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다른 아이들을 괴롭혀서 울리곤 합니다. 왕두는 이런 것이 무척 싫었습니다. 자기가 힘이 세 다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가 되어서 놀자고 자기 나름으로는 장난을 거는 것인데 아이들은 걸핏하면 울어 버리는 것이 기분이 나빴습니다.

“야! 난 너희들하고 함께 놀려고 그러는데 너희들은 건드리기만 하여도 내가 괴롭힌다고 생각을 하니까 난 너희들하고 놀 수도 없지 않냐?”하고, 짜증을 부려 보았지만 아이들은 왕두의 그런 말이 모두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으로는 왕두가 자기 힘을 자랑하기 위해서 일부러 남을 괴롭히는 것으로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두의 힘이 하두 세서 장난을 걸기 위해 슬쩍 건드려도 다른 아이들은 그만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야! 왕두! 넌 아이들을 왜 그리 괴롭히는 것이니?”
“선생님 제가 아이들을 괴롭히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하고 장난을 하며 놀자고 난 장난을 거는 것인데, 아이들은 그게 그렇게 아파서 자꾸 날더러 때린다고 그러는 것 이예요.”
“늘 그랬으면 이제 좀더 살살 하면 되지 않아! 아직까지도 그렇게 힘 있게 때리니까 아이들이 그러는 게 아니야?”
하면 머리를 긁적이면서
“미안해! 이젠 살살 할께!”
하고 말은 하지만 그 말은 금방 헛소리가 되고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깐에는 살살 한다고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게 장난을 거는 만큼의 살살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하루, 아니 한 시간도 선생님의 꾸지람을 듣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이 없을 만큼 왕두는 학급에서 말썽꾸러기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덤벼들지 않으니까 싸움을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감히 왕두하고 힘을 겨룰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만도 천만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시골구석이어서 다른 학교의 아이들과 맞붙어서 싸우는 일도 벌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왕두는 혼자 심심해서 다른 아이들은 집적거리고 다른 아이들은 그런 왕두가 괴롭힌다고 싫어하는 정도이었습니다. 이 정도를 가지고 깡패라는 말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단지 힘이 좀 세고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가 더 커서 함께 겨루고 부딪고 할 상대가 없어서 심심한 왕두의 장난이 말썽일 뿐이었습니다.

“야! 왕두! 넌 힘이 넘쳐서 어디 쓸 곳이 없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장난을 거는 것이라고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너의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미리 말을 하거나 힘을 빼고 살짝 장난을 걸도록 해! 알겠니? 아이들은 장난으로 돌멩이를 던지지만 연못 속에 있는 개구리들은 그 돌멩이에 맞으면 죽기 때문에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무서운 일이 된다는 이솝이야기도 있지 않니?” 하고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면 금방
“예, 알았습니다”하는 대답은 잘하였지만 아이들의 불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곁에서 보아도 그 정도는 장난으로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은 장난을 하고 싶지 않은 아이를 자꾸만 집적거리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더욱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왕두를 어떻게 좀더 착한 사람을 만들어 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날마다 남겨서 숙제를 시켜 보기도 하고, 힘 드는 일이 있으면 시키고선 잘 했다고 칭찬을 하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의 효과는 오래가지를 못했습니다. 금방 또 다른 일을 일으키곤 하여서 선생님도 참기가 힘드시는지 몹시 나무라시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썽꾸러기 왕두가 어느 날 갑자기 숙제를 해오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하였다고 아주 딴 사람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왕두가 대견하고 기뻐서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녁이면 집으로 와서 모르는 것을 배우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왕두는 공부를 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열성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가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저녁이 늦으면 밥을 굶고 와서 저녁 열시가 넘도록 공부를 하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왕두를 보면서 우리 친구들에게 “왕두를 보아라. 자기의 앞날은 저렇게 자기 자신이 바꾸어 갈 수 있는 것이란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열심히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 내고 말 것이다”하고, 왕두를 칭찬하였습니다. 정말 왕두는 나날이 다른 아이가 되어 갔습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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