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에 관한 옛추억을 떠올리며

2010.10.19 08:07:00

추석이 지나고 며칠 후 우리 학교 선생님 한 분이 교장실 복도에서 종이가방 하나를 건넨다. 그러면서 하는 말, "이번 추석에 강릉 시댁에 다녀왔어요. 시부모님께서 호두 선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해 주십시오."

호두를 자세히 살펴보니, 호두나무에서 직접 수확한 것이다. 시부모님께서 며느리 학교의 교장선생님까지 생각하여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 정성스런 마음 씀씀이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 호두, 어떻게 할까?" 교장실을 찾는 손님들이 몇 개씩 선물로 가져가신다. 어느 분은 직접 호두를 까서 맛을 보신다. 호두 깨뜨리는 방법을 보니 바닥에 놓고 발로 밟는다. 아마도 망치가 있다면 도구를 이용했으리라.

문득, 어렸을 적 추억이 떠 오른다. 아마도 정월 대보름 무렵이었을 것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부럼깨기 풍습에 따라 부모님이 땅콩, 호두 등을 사오시면 그것을 깨뜨려 먹었다. 견과류에 들어 있는 영양소를 섭취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집은 망치로 호두를 힘 있게 으깨는게 아니라 살살 작은 충격을 가한 다음 칼을 이용해 반토막을 내었다. 그리고 바늘을 이용하여 호두 속 알맹이를 조심스럽게 꺼내 먹었다. 그리고 반토막난 호두껍질을 밥풀을 이용하여 다시 붙였다. 알맹이를 껍질에 비벼 윤을 내기도 하였다. 

호두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던 것이다. 두 손 바닥 사이에 넣고 비비기도 하고 한 손에 호두 두 개를 넣고 마찰시키며 놀았던 것이다. 그 당시 어른들이 했던 것처럼 호두를 손 안에 넣고 비비며 소리 내는 것을 흉내낸 것이다.

요즘 아이들, 그런 낭만이 없다.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어른들이 낭만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여 줄 여유를 갖고 있지 않다. 아이나 어른이나 바삐 세상을 살다보니 재활용을 대비해 호두까는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호두를 비비면서 복잡한 생각을 다듬고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호두까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다. 필자는 교장실을 방문한 분을 흉내내어 방석위에 호두를 놓고 발뒤꿈치로 충격을 준다. 아내는 호두를 수건으로 감싼 다음 발로 지그시 밟는다. 두 가지 방법 모두 호두 껍질은 조각나고 만다. 껍질 재활용은 생각하지 않고 알맹이만 꺼내어 먹는 방법이다.

요즘처럼 바쁜 생활, 문득 40여 년 전의 옛생활이 그리워진다. 호두를 깰 때 박살내어 빨리 꺼내 먹지 않는 여유, 호두 껍질을 반토막 내어 다시 놀이도구로 활용하는 지혜, 알맹이를 다 먹지 않고 껍질에 발라주는 베풀음, 어른들의 멋스런 여유를 흉내낼 줄 아는 재치 등.

호두에 얽힌 풍습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제 전해줄 사람도 별로 없고 그것을 이어받을 아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문화의 전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져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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